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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Jan 04. 2024

삿포로 징기스칸: 여행 첫째 날은 무조건 고기지

당신이 50대 부모님과 삿포로 여행을 간다면 (2)

4박 5일 중 '1일 차 저녁' - 26.12.2023


<차례>

- 호텔을 나서며

- 요조라노 징기스칸 45점

- 삿포로 시계탑 & 세이코마트

- 크로스 호텔 삿포로 (대욕장)


만약 당신이 50대 부모님과 겨울 '삿포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만약 당신이 50대 부모님과 올 겨울 삿포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시리즈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활동적이지 않은 두 부모님과 가까스로 평균 체력을 넘는 두 20대 남매가 다녀온 삿포로 여행 일정을 소개한다. 이 일정이 심심하다고 생각된다면 마음껏 자기 취향대로 코스를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삿포로는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구석구석 뜯어볼 곳이 많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눈 내린 삿포로를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부디 가족의 체력과 여행 성향을 고려해 무탈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호텔에서 나오자 거짓말처럼 눈이 펑펑 쏟아졌다 / 두번째 행 가운데 사지은 <삿포로 TV타워>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호텔을 나서며


예상치 못한 감상


삿포로 밤거리를 구경하며 예약한 식당으로 걸어가기 위해 조금 서둘러서 호텔을 나섰는데, 하늘에서 새하얗게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펑펑. 눈꽃은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위로 들고 눈을 맞았다. 눈앞을 가리는 함박눈과 이에 대비되는 포근한 날씨는 우리가 정말 홋카이도에 왔구나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4박 5일 동안 녹지 않은 빙판길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조금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밤의 풍경은 빙판길을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회색빛의 삿포로를 보고 실망했던 부모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식당을 찾아가며 삿포로 시계탑, 오도리공원, 삿포로 TV타워, 트램, 니카상 전광판 등을 지났다. 그곳이 관광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눈이 내리는 삿포로는 어디에서 카메라를 들더라도 사진을 찍을 만한 풍경이었다. 스마트폰 렌즈가 젖는 것만 주의한다면 말이다. 사진 찍는 기술이 아직 부족해서 이 날 밤의 모습을 그대로 못 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파, 양파, 소스는 기본 제공
번역기 돌리는 남매 / 삿포로 생맥주
징기스칸과 냉면(?) 면발'만' 맛있다
<니카상>이 빼꼼 보이는 자리였다



요조라노 징기스칸 45점 (夜空のジンギスカン 45店)


정보: 나쁘진 않지만, 징기스칸으로 배를 채우고 싶다면 <비어가든>으로


삿포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징기스칸은 홋카이도의 대표 음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질 좋은 징기스칸을 무한으로 즐기고 싶다면 삿포로 맥주박물관의 <비어가든>을 예약할 것을 추천한다. 징기스칸에 사용되는 양고기는 대부분 수입산이므로 홋카이도 현지에서 먹는다고 해도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일본산 양고기는 고급 재료로 여겨져 더욱 비싸다고. <요조라노>도 맛이 좋지만 주문할 때마다 가격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면 <비어가든>이 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나의 경우 예약 경쟁이 심하지 않으면서 스스키노 시내에서 징기스칸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조라노>를 선택했다. 핫페퍼에서 예약했는데, 구글맵을 통해 핫페퍼로 연결되며 회원가입 없이도 예약이 가능하다.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징기스칸 식당인 <다루마>를 예약할 자신이 없다면 <요조라노>도 나쁘지 않다. 안쪽 자리를 안내받으면 창 밖으로 빼꼼 보이는 <니카상>을 볼 수 있다.


네 명이서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를 각 2인분 씩 주문했는데 밥과 함께 먹어도 양이 많지는 않았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시는 부모님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소스 두 종류는 모두 약간 꼬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매콤한 소스가 있다면 더 좋았을 뻔.


모자란 양을 채우기 위해 냉면과 육개장을 주문했다. 냉면은 당당히 '냉면'으로 소개되어 있고, 육개장은 음식 이름은 보지 못했지만 메뉴판 사진이 누가 봐도 육개장 같았다. 우선 육개장은 맛은 괜찮았지만 육개장 맛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참깨라면' 국물맛과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한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것을 넣은 것일까. 냉면은 비추. 냉면 역시 전형적인 냉면 육수 맛과는 전혀 달랐는데, 굳이 설명하자면 오이냉국과 냉면 그 사이의 오묘한 맛이었다. 면발 하나는 탱글했지만 국물은 마실수록 별로였다. 한국에서 먹듯이 후식으로 냉면을 시킨다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이 음식에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양=몽골=징기스칸' 이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라고 한다. 혹은 불판 모양이 몽골의 투구와 비슷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이제는 좀 무서울 정도로 오는 삿포로의 눈발
스이토모 부동산(住友不動産) 전광판 / 눈을 괜히 만졌다

기름진 감상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눈발은 더 세졌다. 잠시 지하도로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남은 여행 기간 동안 눈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은 눈을 더 맞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멈춰서 모자와 패딩에 쌓인 눈을 털어야 했지만, 오래간만에 맞는 깨끗한 눈은 여전히 반가웠다.


그러나 아무리 반가운 눈이라도 계속 맞다 보니 몸이 좀 으슬으슬해졌다. 우리 가족은 대욕장에서 몸을 녹이고 다음 날 일정을 짜기 위해 서둘로 호텔로 이동했다. 오는 길에 <다누키코지 상점가>도 보았는데 여타 상점가와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여 남은 일정 동안 방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점가 안에 부타동 맛집(<Kobutaya>)이 있다고 했는데 가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삿포로 시계탑>
일본 편의점의 잡지는 기본적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 같다
'북해도 딸기 소프트'라고 써있다 / 삿포로 클래식 / 세이코마트 PB 상품으로 나온 요거트


삿포로 시계탑&세이코마트


정보: <삿포로 시계탑>은 해가 지기 전 오후에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예쁘게 나온다


<삿포로 시계탑>은 시내를 걷다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의식하지 않고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도 항상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있으므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삿포로 시계탑>에는 한쪽에 마련해 둔 나무 단상 외에도 세 가지 포토 스팟이 존재한다.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확인. 내부를 구경하는 관광객도 있지만 성인 입장료가 200엔인데 비해 좁은 공간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으니 한 번 생각해 보고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외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무료.


<삿포로 시계탑>의 정식 명칭은 '구 삿포로 농학교 연무장'. 과거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으로 사용되다가 몇 년 후에 시계를 단 것이라고 한다.


<세이코마트>는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편의점 브랜드로 대부분의 점포가 홋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편의점 만족도 순위에서 수 차례 '1위'를 달성할 정도로 고객들의 충성도와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홋카이도산 우유, 과일 등을 활용한 PB 상품을 만날 수 있다.




달달한 감상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세이코마트>를 찾았다. 홋카이도산 재료를 활용한 간식들을 구매했는데 계란빵, 요거트, 맥주, 아이스크림 등이었다.


호텔에서 스스키노 거리까지 한국인을 한 명도 못 봤는데 <세이코마트> 앞에서만 5~6명의 한국인을 마주쳤다. 그만큼 일본 여행에서 편의점을 찾는 것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된 것 같다. 아마 '홋카이도에만 있는 편의점'이라는 타이틀 탓에 더 그런 듯하다.


호텔 객실에 냉동실이 없었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먹고 대욕장으로 향했다.




크로스 호텔 삿포로 (대욕장)


정보: <크로스 호텔 삿포로> 대욕장에는 할머니 직원도 들어온다


<크로스 호텔 삿포로> 18층에 위치한 대욕장. 일본의 다른 숙소에 비해 객실 욕조가 큰 편이었지만 온천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체크인할 때 받은 '코드'를 목욕탕 입구에서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남탕과 여탕 코드를 따로 준다. 영수증에 코드가 적혀 있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어 놓는 것을 추천한다.


남탕의 경우 할머니 직원이 라커 정리를 위해 들어올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


대욕장 규모는 크지 않다. 앉아서 씻는 자리와 서서 씻는 자리 모두 합해 샤워기는 10개가 조금 넘고 실내에 탕 하나, 야외에 탕이 또 하나 있다. 야외탕은 벽으로 사방이 막혀 있고 천장만 뚫려 있는 구조니 추위가 무섭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대욕장 라운지에는 자판기가 한 대 있는데 커피우유는 없으니 목욕 후에 마시고 싶다면 편의점에서 미리 사두도록 하자.



당황스러운 감상


아빠는 이 날 대욕장을 가지 않아 나 혼자 욕탕을 찾았는데, 할머니 직원분을 입구에서 마주쳐 깜짝 놀랐다. 목욕탕 출입 코드를 찍은 사진을 찾으려고 스마트폰을 뒤지고 있었는데 남탕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60세 이상 되어 보이는 할머니 직원과 마주쳤다. 순간 내가 여탕에 들어가려고 했나 해서 깜짝 놀랐는데 직원분께서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나중에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려 나갈 때 한 번 더 그 직원분을 발견했는데, 그때는 다행히 마주치지 않고 발닦이용 수건만 갈고 나가셨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고 조금은 불편했지만 남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청소부 할머니라고 생각하니까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등산화 탓에 뭉쳤던 종아리를 따뜻한 물에 녹였더니 한결 편안해졌다. 야외탕은 눈보라가 겁이 나서 나가지 않았다. 세 시간 이상 늦어진 일정 탓에 저녁을 먹은 것 외에는 특별히 한 일은 없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여행 첫날부터 진정한 삿포로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새하얀 삿포로는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방문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짧은 목욕을 마치고 객실로 돌아와 삿포로 클래식 한 캔을 비운 후에 다음 날 코스를 점검했다. 눈 덮인 <마루야마공원>을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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