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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Jan 30. 2020

우리는 가성비 행복에 길들여져 있었다

디지털 네이티브, 그거 정말 좋은 거 맞나요?

 매체가 앞다투어 Z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지칭한다영어 원어민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고 유창하게 하듯,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해 기기사용에 능숙하다는 의미다. 유튜브를 끼고 살며 수시로 영상을 보고 심지어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하는 모습 모두 '디지털 네이티브'에 해당된다.


각 매체가 어떤 관점으로 이들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요즘 나는 과연 이것이 정말 능력이 맞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사람과의 접촉은 사치재가 됐다

11월 8일자 동아일보 신문에 실린 칼럼 <디지털 정보 과잉시대...사람과의 접촉이 사치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놀이학교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논할 가치가 있는 글이기에 서문을 인용한다.


"대기업 오너의 손주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곳은 뜻밖에도 첨단 건물이 아닌 2층짜리 낡은 주택에 있었다넓은 잔디 정원 한쪽에 모래밭과 그네가미니 사육장에 토끼와 강아지가 있었다독립서점처럼 꾸며진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언제든 그림책을 읽을  있게 했다. 디지털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30 이상이라면 어릴  쉽게 누렸던 환경이겠지만지금은 그렇지 않다우러 200만원 안팎을 내야 다닐  있는 곳이 됐다.


'사람과의 접촉이 사치재가 됐다(Human Contact Is Now a Luxury Good)'라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생각난다빈자의 삶에는 스크린이  많이 들어오고 부자의 삶에선 스크린이 사라진다.' "


대기업 오너의 손주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우리는 그들이 좋은 기기가 갖춰진 첨단 시설에서 교육받을 거라 짐작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디지털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한, 동물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에서 교육받고 있었다. 디지털보단 아날로그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지 않고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종이책의 촉감을 느끼고 책의 향기를 맡으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 jens_johnsson, 출처 Unsplash

반면 '없는 집'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 맞벌이를 하는 모부는 늘 바쁘다. 이들에겐 식탁에 둘러앉아 찬찬히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함께할 여유가 없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겨우 집으로 돌아온 모부는 언제나 피곤하다대화를 시도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 하나를 건네준다. 그렇게 아이의 하루는 가족과의 대화가 아닌 스마트폰이 차지한다. 곧 스마트폰은 다소 '무서운' 친구가 된다. 어쩌다 모부가 대화를 시도해도 아이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가있다.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미국 보건정책 연구단체인 카이저가족재단의 조사 결과 부모 최종 학력이 고졸 이하의 경우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시간이 대졸 이상인 경우보다 하루 평균 90분 많았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 학생의 디지털 중독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더이상 청년세대에게 디지털은 '쿨'한것이 아니며, 희소한 아날로그가 쿨해졌다"고 주장한다. 종이잡지가 사양산업으로 간주되는 것에 반해, 소비자들은 종이잡지 같은 인쇄물을 더 럭셔리한 것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아날로그로 가득찼던 과거엔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이 소비자들을 매혹시켰을지 몰라도 이젠 편리함만으론 고객을 100% 만족시킬 수 없게 됐다.

© harlimarten, 출처 Unsplash

편리함에 대해서라면 사람 과 사람 사이의 대면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것이다. 직접 만나는데 요구되는 시간과 돈을 전화를 통해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현대인들은 전화하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하니 카톡 등 메신저가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는 편리함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세상이 편리함으로 가득찬 지금, 사람들은 편리함을 탈피하려고 한다. 약간의 불편함이 가져다주는 '소중함'이라는 감정, 그 비효율적인 낭만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성비 행복이 아닌, 온전한 몰입을 원한다


나 역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낸다. 하루의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고, 출퇴근길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본다. 주말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영화를 예매해 직접 영화관으로 향하는 행위보단 편한 게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영화를 보면서 오는 피로감도 없다. 혹시나 누가 시끄럽게 하진 않을까, 영화 중 휴대폰을 확인해 눈부시게 하진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에서부터 자유롭다.

© ewitsoe, 출처 Unsplash


그럼에도 영화관에서 2시간의 시간을 투자해 영화를 보고 오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다.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2시간동안 카톡 알림이나, 유튜브 접속 등 쓸데없는 유혹으로부터 해방된다. 사람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카톡으로만 대화하다 오랜만에 직접 만났다고 가정하자. 함께 밥을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건 분명 메신저 대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즐거움을 준다.


우리는 그동안 '가성비 행복'에 길들여지지 않았을까. 월정액 얼마를 내면 모든 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로 우리를 유혹한다. 실제로 이런 서비스는 꽤나 유용하다. 디지털이란 그런 것 같다. 무가치하지 않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유용하다. 무엇보다 편하다. 우리가 마땅히 겪었을, 겪어야 할 불편함을 제거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이 편리함을 전부로 알고 이에 안주할 때 놓치는 것들이 생겨난다. 사람간의 관계와 온전한 몰입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네이티브'를 대단한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아날로그 세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디지털 네이티브는 미지의 대상이며 그들의 행동은 마치 외계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낯설게 느껴질지도. 하지만 막상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10대들은 그 스마트폰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것'을 '사용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진짜 가치있는 삶, 사람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한 것 같아 안타깝다. 디지털은 이들에게 달콤한 대체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이 '가성비 행복'인지도 모른 채 반쪽 짜리 행복에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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