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엄청난 일을 접하면 뭐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지금이 그렇다. 노트북을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지만 무엇부터 써야할지 막막하다.
N번방 텔레그램 사건, 지금은 국민일보의 <N번방 추적기> 기사 덕분에 많은 이들이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사 보도 전부터 사건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일보의 기획기사를 오늘에서야 읽었다. 3월 9일 보도된 기사였는데.
사건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하려 한다.
남성가해자들이 트위터 '일탈계'를 올린 미성년자들에게 경찰을 사칭해 접근하고, 이들의 신상. 사진을 요구한 후 결국 '노예'로 만든 사건이다. 노예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대체가능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네 사진을 뿌릴 거야"라는 협박을 하며 피해자들이 자신의 몸에 노예라는 단어를 칼로 새기게 했다. 여성을 '피싸개'라고 지칭했으며, 미성년자 아이를 숙박업소로 유도해 강간하고 그 영상을 공유하길 서슴치 않았다. 모두 기사에서 본 내용들이다. 전에 들었던 내용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보도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첫째 이유는 N번방 텔레그램에 대한 한국언론의 무관심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나는 신문을 매일 읽는다. 동아일보를 몇 개월동안 보며 시사용어를 정리해왔고, 3월 현재는 한국경제를 보고 있다. 그런 내가 이 보도를 오늘에서야 보았다는 것은, 동아일보.한국경제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아닌지 궁금해 직접 네이버뉴스에 언론사별 뉴스로 조회를 해보았다. 동아일보의 경우 N번방 혹은 텔레그램 N번방이라고 검색해도 조회되는 기사가 없었다. 그 어떤 기사도 없다는게 가장 충격이었다.
한국경제의 경우, N번방을 치면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해결'이 국회국민청원에서 10만명의 동의를 달성했다는 보도, 경찰이 텔레그램 운영자인 '박사'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는 보도만 검색됐다. 조선일보도 매한가지였다. 단 세 건의 기사가 조회됐는데 그마저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마지못해 보도하는 시늉만 낸 듯했다.
심지어 '진보'를 표방하는 시사IN도 그 어떤 기사도 내놓지 않았다. 시사인의 유료독자로서, 정말 정말 실망스럽다. 26만명의 가해자가 존재하는, 심지어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사건은 1면에 대서특필돼야 마땅하다. 죄질이 나쁘고 끔찍하다. 하지만 이를 심층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드물었다. 여성피해자는 1면에 등장할 수도 없구나 싶어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평소 국민일보와 실검 모두 즐겨 보지 않기 때문에 이제야 그 기사를 봤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사실 부끄럽다. 정말 '중요한 뉴스'라고 여겼으면 수시로 검색해서 봤을텐데. 코로나 확진자수는 자주 찾아봤으면서 N번방은 좀처럼 검색하지 않았구나 싶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 국민일보가 이번에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지옥같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의 고통을 마주하는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피해자의 고통이 가장 중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한 기자들에게도 너무 고생많으셨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결국 언론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과 정치인들, 기업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아무리 대대적인 발표를 한들 모든 언론이 그 곳에 쏠려 있으면 어디선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는 잊혀진다. 조국 사건 때도 정말 많은 이슈들이 덮였는데, 이번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텔레그램 법안과 N번방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더 널리 공론화돼야 마땅한, 극악무도한 범죄임에도.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고 끔찍해 사실 기사를 보는 것도 힘겨웠다. 하지만 내가 겪지 않았을 뿐,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분명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모두가 앞을 바라볼 때, 양 옆 혹은 뒤에서 고통의 울부짖음이 들리진 않는지 돌아봐야겠다. 그런 기자가 되고 싶고 그런 기사를 쓰고 싶다. 세상엔 아직 조명되지 않은 고통들이 너무나 많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말로만 그렇게 외치지 않고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고, 손을 바삐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각오한다. 이 글은, 반성과 각오 그 어딘가에 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