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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Aug 28. 2020

인생영화 <먼 훗날 우리>: 가난해서 아름다운, 처절한

우리네 청춘을 여과없이 그려내다

15년 12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마냥 좋았다. 그 때만 해도 훗날의 내가 어떤 고생을 겪게 될지 몰랐기에.


16년 2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은 내 상상과 전혀 달랐다. 왕복 4시간을 통학하고 저녁도 못 먹고 알바하러가는 4개월을 살았다. 서울에 본가를 두지 않은 '원죄'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캠퍼스라이프를 전혀 즐기지 못했다. 참다못해 독립을 결심했다. 엄마는 "너 알아서 해"로 일갈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집을 떠난 9월, 내가 살게 된 곳은 학교 앞 고시원이었다. 보증금이 없었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과외를 3개씩 해서 월 90만 원을 벌웠고, 월세로 35만 원을 지불했다. 창이 밖이 아닌 내부로 나있던 방이라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불을 켜지 않으면 정오에도 깜깜했다. 전날 새벽에 잠든 날은 11시까지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햇빛이 그리웠다.


그 이후엔 정말, 다양한 곳에서 살았다. 다행인 점은 내 공간이 점점 더 나아졌다는 것. 동아리 언니와 투룸에서 1년 가량을 살았고, 교환학생에서는 북경의 기숙사에서 외국인 룸메와 살았다. 셰어하우스, 기숙사 정말 다양하게 떠돌아다녔다.


<먼 훗날 우리>가 지독하게 와닿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중국의 중심, 베이징으로 올라와 고생하며 살아가는 젠칭과 샤오샤오를 보며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나 역시 경기도 소도시에서 많은 꿈을 갖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은 나를 긴장하게 하는 곳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수록 성공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고, 그런 열망은 나를 긴장하게 했다. 서울의 불빛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성공을 향한 열망이 모여 이룩한 불빛이기 때문일 테다.


내가 경험한 베이징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집합체였다. 1환부터 7환까지 구분된 도시. 천안문이 있는 중심은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황폐했던 곳이었다. 그런 베이징에서 중국의 청춘들이 좁은 기숙사에 몸을 우겨넣고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먼 훗날 우리>는 나의 온갖 경험들을 소환하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 리뷰를 쓰기 위해 영화 전체를 한 번 더 봤다. 영화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 그만큼 좋은 영화여서다.






1. 더 넓은 세상을 찾아 온 베이징, 기다리고 있는 난관들


중국은 균형발전이 전혀 안 되어있는 국가다. 베이징과 내륙지방의 인프라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청춘들은 좋은 학교와 직장,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꿈을 찾아 베이징으로 올라온다. 지방의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한국 청년들보다도 더 절박할 것이다. 한국보다 지역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말야. 몇년이 흘러도 변한 게 없어. 시간이 멈춘 거 같아. 난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어."


"새해에는 좋은 직장 구하게 해주세요. 성공해서 베이징에 오게 해주세요."

"바보야. 성공하면 베이징에 살아야지. 고향에 왜 와?"


춘절을 맞아 고향에 방문한 젠칭과 샤오샤오의 대화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베이징에 왔다는 말에 백 번 공감한다. 문제는, 그 '넓은 세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인 걸 겪어보기 전엔 미처 모른다.


젠칭의 동료들은 하나 둘 베이징을 떠난다. 높은 월세, 비좁은 방, 외로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청춘에게 종합선물세트로 찾아오는 고통들을 견디기 어려웠을 테다. 꿈보단 돈이 먼저인 것 같아서, 부모님이 고향에 공무원 자리 잡아놔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귀향을 결심한다. 그런 상황 가운데 샤오샤오와 젠칭은 베이징에서 버티려 안간힘을 쓴다.


"베이징에 사는 게 내 평생의 꿈이었다. 천안문을 지날 때마다 짜릿한 일이 끊이지 않는구나 싶다.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극 중 젠칭의 대사)



2. 모든 문제는 '집'에서 시작된다

2007년 춘절, 린젠칭과 팡샤오샤오는 귀향하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각각 '성공해서 고향에 가겠다'는, '베이징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샤오샤오는 베이징에 정착하기 위해 베이징 남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직업이 좋고 안정적인 삶을 산다는 이유로 나이도 많고 외모도 형편없는 남자들과 연애하길 몇 번. 샤오샤오가 애인과 헤어지고 갈 곳이 없을 때마다 옆에 있어준 사람은 젠칭이었다. 젠칭은 자신의 '집'에 샤오샤오를 들이고, 이내 이들은 연인이 된다.


출처 바이두

바로 이 '집'이 문제의 시작이다. 그들이 살았던 집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형태의 원룸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주택이나 아파트 내부를 개조해 여러 개의 작은 방을 놓는 형태의 월세방 '춴쭈팡'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살았던 춴쭈팡은, 집보단 닭장에 가까웠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왜 고향집을 놔두고 '닭장'에 살면서까지 베이징에 남으려고 했을까? 샤오샤오는 왜 찌질하기 그지 없는 베이징 남자를 만나려고 했을까? 이 물음의 답은 중국의 호구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다. 우리가 재산권을 행사해 집을 매매.임대하고 그 지역 주민등록을 거치면 그 지역 사람이 된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베이징 호구를 가져야만 '베이징 사람'이 될 수 있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농민공'들은 호구가 없는 2등 시민이 된다. 료보험도, 자녀교육도, 기타 복지도 누릴 수 없다.


이렇게 두 주인공의 평생소원은 '베이징에 집을 얻어 정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영화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들의 이별, 그 후 젠칭은 게임시나리오로 크게 성공한다. 돈이 들어오자마자 젠칭이 바로 한 것은 베이징에 집을 산 것. 그 후 찾아간 고향에서 아버지에게 "샤오샤오와 함께 집에 들어오세요."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집은, 단순히 몸을 누윌 곳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3. 주워온 쇼파도 가져갈 수 없는 현실


"몸이 너무 아파. 얼른 와줘."


샤오샤오의 전화를 받고 급히 귀가한 젠칭. 그러나 샤오샤오는 버려진 쇼파 위에 앉아 웃고 있다. 쇼파를 방에 가져가자는 의미다.


젠칭은 방에 두긴 너무 크다며 거절해보지만 샤오샤오의 간절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남이 쓰다 버린 낡은 쇼파를 방에 가져온 그들은 마냥 행복해한다.


그런 소소한 행복이 오래 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들은 집주인의 전화 한 통에 급하게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된다. 낡아빠진 살림들을 덜덜이에 실은 후 자신들도 짐처럼 올라타 어딘가로 향할 때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그 순간 카메라는 쇼파를 비춘다.


가난은 얼마나 잔인한가. 주워온 쇼파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해했는데, 그것마저 가져갈 수 없다니. 이들에게 허락된 파이는 참으로 조그마하다. 주워온 쇼파마저 버리고 쫓겨나듯 집을 떠나야 할 떄의 심겨은 어땠을까. 가난이 지겨워서, 가난으로 인한 상실이 지겨워서 이를 갈았으리라.


4. 가난해서 아름다운, 가난해서 처절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모 교수의 말에 치를 떨었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 말이 싫다.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환자라고 믿는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원래 그래'라는 말이 아닌, 적절한 치료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먼 훗날 우리>의 청춘들은 참 아름답다. 그들이 살아내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지 알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성공하면 집 8채 사서 하나는 너 줄게."

"우린 아직 젊고, 이렇게 똑똑하잖아. 지금은 가난해도 꼭 성공할거야."


가진 게 없음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처연한 삶 사이로, 그들의 패기와 믿음이 보였다. 오늘의 힘겨움 속에서 빛을 잃지 않는 모습, 작은 골방에서 복덕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예뻤다.


2007년 마지막 날, 젠칭과 샤오샤오는 비좁은 방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고 새해를 맞는다. 방음도 안되는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그렇게 '빌어먹을 2007년'을 보내고, 다가올 2008년을 맞는다. 그들의 2007년은 힘겨움으로 가득했지만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추억이 된다.



하지만 가난은 필연적으로 처절함을 부른다. 젠칭이 춘절을 쇠러 고향에 갈 때 차를 빌리고 오리구이를 잔뜩 사간 것도, 열등감에 몸서리 쳤던 것도 다 그 처절함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게 없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그 가난의 냄새를 허세로 감춰보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소용이 없다. 있는 자에게만 있는 '여유'가 없으니까.


샤오샤오가 젠칭을 떠난 후, 젠칭은 게임시나리오롤 성공한다. 그 후 샤오샤오에게 연락해 고향에 함께 내려간다. 샤오샤오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한다.


"집이 없어서 널 떠난 게 아니야. 난 보금자리를 원했어."

"그래, 이제 사랑과 보금자리 둘 다 줄 수 있다고. 네 소원대로 베이징에 집을 샀는데 이건 사랑이 아니야?"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 장면이 내게 참 어렵게 느껴졌다. 젠칭처럼 대단한 성공을 이뤄보지 못해서일까. 샤오샤오는 왜 젠칭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까. 사람의 마음보다 '집'에 집착하는 듯한 젠칭이 낯설었을까?


젠칭은 아버지에게 베이징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며 "언제까지 혼자 그 낡은 식당 하시며 사실 거에요?" 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낡은 식당이라니. 이거 해서 너 키우고 대학 보낸 거다." 라며 성을 낸다.


가난이 불러온 상실감은 처절함을 낳고, 그 처절함은 성공 외에 다른 것은 볼 수 없는 안대를 씌워준다. 젠칭 역시 독하게 성공했고, 이제 다 이루었다 믿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버지에겐 고향과 식당이 전부라는 것, 그 '전부'에 남고 싶어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겠지.



5. 현재와 과거의 교차  : 흑백과 컬러

<먼 훗날 우리>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과거가 컬러, 현재가 흑백으로 표현되는 데 이는 드문 설정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처럼 과거의 사건이 흑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더 보편적이다


왜 현재(과거 시점에서는 미래)의 일을 흑백으로 표현했을까? 나는 그 답을 젠칭이 만든 게임에서 찾았다.

"이언이 켈리를 못 찾으면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해."


젠칭이 만들어낸 게임 속 캐릭터 이언과 켈리는 젠칭과 샤오샤오를 대변한다. 젠칭이 결국 샤오샤오를 잡지 못했기에, 온 세상이 무채색 즉 흑백으로 변한 것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지만, 젠칭에겐 샤오샤오가 없다. 샤오샤오 역시 미국 행을 앞두고 있지만 곁에 젠칭이 없다. 그래서 이들의 현실은 10년 전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서로의 부재가 세상의 모든 색들을 흡수해버려, 흑백만이 남았다.




중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중국 영화, 특히 중국 로맨스 영화는 대만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생각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청설>에서 느꼈던 잔잔한 감성을 중국 영화에선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먼 훗날 우리>는 다르다. 순식간에 내 인생영화로 등극해버렸다. 기존 중국 영화들과 달리 전혀 선전적이지 않다. '중화사상'을 강요하지도, 중국인들의 삶이 모두 행복하고 화려한 것처럼 포장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사랑과 청춘을 한 치의 여과없이 그려낸다. 그렇게 나는 2시간동안 중국 젊은이들의 현실을 살았다.


중국영화가 가야할 방향은 이런 게 아닐까. 겉보기엔 급성장하는 중국 안에서 내 자리, 내 집 하나 마련하려 발버둥치는 청춘의 적나라한 삶. 마오쩌둥을 추대하지도, 재벌과의 사랑을 그려내지도 않은 채, '현실'에서 오는 감동을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먼 훗날 우리>의 배경은 중국 베이징이지만, 서울살이하는 한국의 청년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기에 주인공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우리도 광화문, 을지로의 야경을 볼 때마다 내 자리도 어디에 있을거라는 꿈을 꾸지 않는가.


이 영화는 단순 로맨스영화가 아니다. 현실과 사랑 모두 잡아보려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젊은 날의 초상이다.




<먼 훗날 우리>

8.27 넷플릭스 관람

평점: 9.5/10

한줄 평 : 현실과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을 여과없이 그려낸 영화. 결국 우리의 이야기.


꼭 봐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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