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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Aug 30. 2020

왓챠의 영화추천은 정말 '정확'할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데이터가 아닌 '이것'이다

나는 삐딱한 데가 있다. 다들 칭찬하는 서비스나 콘텐츠에 대해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트렌드'라고 불리는 것들에 비판적이다.


태생이 삐딱한 건지, 생각이 많아서 삐딱해진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이러한 성향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관련 주제를 공부해 글로 녹여내는 것, 독자와 입체적인 관점을 공유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


그래서 [정말 그럴까?]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런 뉘앙스를 가진 글들을 몇 차례 써왔지만 정식콘텐츠는 이번 포스팅이 처음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작하기 전, 한가지 가이드를 제시하려 한다. 이 글은 개인적 경험 -> 사회적 경향성 - > 비판 -> 결론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소서처럼 두괄식으로 쓰진 않았다. 점점 확장되는 성격을 가진 글이니, 흐름을 잘 따라와주길 바란다.






나는 왜 데이터 기반 영화추천 서비스를 선호하지 않는가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 '영화광'이라고 지칭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영화라면 내용 막론하고 다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킬링타임 용도로 소비하진 않는다. 시간이 한정되어있기에 최대한 명작을 보고 싶어한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클리셰의 상업영화를 지양한다. 한국 코미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히 큐레이션에 관심이 많아졌다. 한정된 시간에 양질의 영화를 볼 수 있길 원했기에, 그런 영화추천을 해주는 플랫폼을 찾아다녔다.


나는 3개의 콘텐츠 플랫폼을 이용한다. 넷플릭스,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 각 서비스가 가진 성격이 전혀 다르기에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그 중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건 왓챠였다.

[유튜브] 왓챠가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건 데이터에 미쳤기 때문이다 


왓챠의 장점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천서비스라고 한다. 실제로 왓챠 COO 분은 자사가 "데이터에 미친 사람들이 만든, 머신러닝 기반의 테크 스타트업"이라고 말했다. 왓챠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데이터' 와 '개인화'이며 이는 왓챠를 다룬 여러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헤비 왓챠유저로서 정말 잘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이지만, 영화추천을 받기 위해 왓챠피디아를 이용하진 않기 때문이다. 142개의 영화를 평가했는데 왓챠피디아가 내 취향을 잘 맞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왓챠가 제공하는 큐레이션에서 '취향저격'을 당한 적이 없었다.


왜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어떤 경로로 영화를 선택하는지 되돌아봤다. 그 결과, 나는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 영화를 선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양질의 영화리뷰를 쓰는 블로거들을 구독해 수시로 추천리스트를 살펴보고, 평론가들이 8점 이상을 준 영화들을 저장해뒀다. 지인들이 '인생영화'라고 말한 영화는 넷플릭스 등에 검색해 찜해뒀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


좋은 영화리뷰를 쓰는 블로거가 추천한 영화는 믿고 볼 수 있었다. 영화 저널리스트들이 호평한 영화도 대개 (서사를 중시하는) 내 취향에 맞았다. 친구들이 인생영화라고 추천하는 영화는, 얼핏보기엔 내 취향이 아닐 것 같아도 한번 봐보고 싶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내 취향인 경우도 있었다.


뒤집어말하면 내가 왓챠피디아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내가 호평한 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줬다고 하는데, 디테일을 중시하는 나는 전혀 비슷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호평한 영화와 '관련있는' 작품을 추천해줬는데 전혀 아귀가 맞지 않았다. 가령 <테넷>과 관련 있는 영화로 <뉴 문>과 <리멤버 미> , <리틀 애쉬>를 추천해주는 식이었다.


참고로 이 네가지 영화의 공통점은 하나 뿐이다. <테넷>의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공통적으로 출연한다는 것. 주연이 같다는 것만으로 이 영화과 서로 '관련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로버트 패틴슨의 필모가 궁금했으면 직접 검색을 하지 않았겠는가.


또 하나의 맹점은 왓챠피디아의 추천이 내가 싫어하는 장르를 전혀 제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겨울왕국>처럼 정말 명작이 아닌 이상에야 잘 보지 않는다. 엊그제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보다가 몰입이 안 돼서 중간 하차했다.



그런데 왓챠피디아는 <ㅇㅇ님의 인생의 작품이 될 지도 모르는 작품들>로 <쿠스코? 쿠스코!>를 추천해준다. 애니메이션 <타잔>, <피오키오> , <목소리의 형태>를 추천해준다. 물론 왓챠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내가 고른 '선호하는 태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쿠스코? 쿠스코!>는 #영상미, <피오키오>는 #OST, <타잔>은 #성장 때문이란다.


정말 ... 할말하않이다. 내가 말하는 #영상미 좋은 영화는 <테넷> <HER> <아가씨> 같은 작품이다. #OST 때문에 좋았던 영화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비긴 어게인>이었다. #성장 으로 고르자면, <제인에어> <작은 아씨들> <미성년> <아이필 프리티> 쯤이 되겠다.


자 어떤가. 내가 언급한 영화들과, 왓챠가 '나를 위해' 추천해준 영화들의 결이 비슷해보이는가? 판단은 자유지만, 나는 결코 그렇다고 느끼지 못했다. 100개 이상 평가하면 유의미한 영화추천이 나온다면서, 내가 애니메이션을 유독 안 보는 건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아직도 지인추천을 선호하는 사람들, 왜 ?


내 얘기가 길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영화를 선택하는지 소개해보려 한다. 다행히 내게 꽤 좋은 데이터가 있다. 지난 5월, A기업 자소서를 쓰기 위해 20대를 대상으로 직접 진행한 설문조사 데이터다.


당시 설문조사에는 '볼 영화를 선택하는 경로를 알려주세요' 라는 문항이 있었다. 응답자는 총 111명이었다. 응답자 111명이 아주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전문 데이터조사업체가 아닌 나로선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데이터였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1위를 기록한 선택지가 두 개였다. 중복선택가능으로 물어서인 것 같다. 공동 1위(64명)는 '지인추천' '플랫폼 내 추천(넷플릭스, 왓챠플레이 큐레이션 등)'이었다. 2위는 '영화 유튜버 추천' 3위는 '영화 평론가 추천' 4위는 '영화 블로거 추천'이었다.


나는 설문결과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지인추천 응답이 많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1위일 줄은 몰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디지털화된' 시대에도 '지인추천'이라는 아날로그 적인 방식을 통해 영화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매우 놀랐었다.


64명 중, 17명의 응답자가 '지인추천에 의해서만' 영화를 선택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많고 많은 큐레이션 중에서 지인추천에 의지하는 이유를 무엇일까?


그 이유를 데이비드 색스의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부제로 쓰인 <아날로그의 반격> 은 디지털화된 시대가 놓친 사람들을 니즈를, 아날로그가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다룬 책이다. 그 중 6장 <오프라인 매장 : 알고리즘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 의 <점원이 추천하는 책> 챕터의 내용을 살펴보자.


<아날로그의 반격>

"핸드셀링(hand-selling)이란 서점 업계의 용어로, 쉽게 말하면 서점 직원이 손님이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 손님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이는 손님의 보디랭귀지를 읽고, 시선을 맞추고, 취향을 묻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책을 권하는 ,가장 기초적인 대인관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아마존은 핸드셀링을 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은 독자가 전에 읽었던 책들과 (그 책들을 읽었던)다른 독자가 샀던 책에 근거해 해당 독자가 읽고 싶어 할 가능성에 가중치를 두고 계산을 하여 책 제목을 추천한다대부분의 경우 아마존은 단지 비슷한 책들을 권하는 느낌이다."


"대형 서점들도 핸드셀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보유한 책이 너무나 많고 직원들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핸드셀링은 독립 서점들이 가장 잘하는 일들 중 하나지요." 바뉼로가 말을 이었다. "핸드셀링은 당신의 다른 사람의 손에 책을 쥐여주면서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아요. 아마 당신 마음에도 들 거에요.' 라고 말하는 순간에 일어나니까요. '딱 맞는 책'을 권하기보다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죠."


정말 인사이트가 가득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중요해서 직접 인용했다.


위 발췌문의 '아마존의 알고리즘'은 '왓챠 등의 영화추천서비스'로, '독립서점의 핸드셀링'은 '지인추천' 으로 바꿔말해도 무방하다. 근본적으로 비슷한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핸드셀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취향을 헤아려주는 대화'에 있다.


친구가 나에게 직접 영화를 추천해주는 과정도 비슷하다.

보통 "음...너가 저번에 <위대한 쇼맨>이 재밌었다고 했나? 좀 따뜻한 느낌의 뮤지컬 영화 좋아하는거야? 아 근데 애니메이션은 싫다고? 그러면 A는 어때? 내 인생영화야."


같은 대화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내 평가한 영화들을 분석해 추천해주는 왓챠의 알고리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다.




바보야, 문제는 '신뢰감' 형성이야


앞서 나는 3가지 방식에 의해 영화를 고른다고 말했다. 1) 내가 '신뢰'하는 영화블로거의 추천 2)평론가들의 추천(영화 시상제 수상작과도 겹친다) 3)지인추천.


언뜻보면 3번과 1.2번은 다른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내게 '신뢰'를 주는 방식들이다. 1번과 2번은 , 추천해주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믿기에 애용한다. 3번은 내 취향을 고려해 영화를 추천해줄 친구를 믿기에 애용한다.


1.2번 방식의 신뢰성은 특색 있는 '카피'에 의해서 더욱 강화된다. 기가막힌 부제를 지은 영화블로거나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영화를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반면 왓챠의 추천서비스는 카피 측면에서 아쉽다고 느꼈다. 평점에 의한 추천서비스도 그닥 못 미더운데, 다른 사람들의 '컬렉션'은 또 끌리지 않는 거다. 다 카피가 아쉬워서 그렇다. #죽기전에_봐야할_101가지 영화 #명작 #진짜_밀리터리 이게 다 언제적 카피인가.


나의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

28일 새벽, 네이버 블로그에 <이 영화는 미친 영화다. 역대급 인생영화>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했었다. 내 글을 본 이들 중 4분이 '이 영화 꼭 봐야겠어요' 라고 덧글을 달았고, 2분이 'ㅇㅇ님 추천으로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덧글을 남겨주셨다.


자세히 보자. 이 분들은 '나레님 추천이니 꼭 봐야겠어요' 라는 뉘앙스의 덧글을 남겼다. 'ㅇㅇ님 추천이니' 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나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계신 거다. 내가 영화평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ㅇㅇ가 강력 추천했으면 괜찮은 영화겠구나'라는 믿음이 있으신 거다. 평소 내 글을 봐왔고 소통해왔기 때문에 생긴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왓챠의 추천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설명할 수 있다.


-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를 자꾸 추천해 신뢰가 떨어지는데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애정없는 컬렉션은 끌리지가 않는다 -



처음부터 말했듯, 큐레이션은 '신뢰'의 문제다.





결론: 데이터는 중요하지만, 전부가 될 순 없다


나는 왓챠를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왓챠 헤비유저이고 영화를 '보는' 용도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왓차의 큐레이션을 통해 좋은 영화를 골랐던 사람들의 경험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빅데이터가 가지는 중요성과 위력을 무시하는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빅데이터라는 의견엔 동의하지 않는다. 각 사람의 취향이 별점을 통해 점수와 등급으로 매겨지는 이 시대는 '내가 널 위해' 이 영화를 추천한다는 감성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감성은 아날로그 특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언급한 핸드셀링처럼.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진 모르겠다. 바라기는, 이 글이 '입체적인' 관점을 가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에 모두가 데이터를 말할 때, 조금 다른 입장의 '삐딱한' 글을 썼다.



** 3번째 소제목 '바보야 문제는 신뢰감 형성이야'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패러디한 것으로 특정 누군가를 비하할 의도가 없었음을 미리 밝힙니다. **



<참고문헌>


1. "내가 이런 영화도 좋아하다니!!" 취향 저격 큐레이션, 유저를 사로잡다

2.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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