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약자의 언어'이다
제목을 보고 혼란스러우셨을지도 모르겠다. '뭐야, 얘는 브런치 작가신청까지 해서 글 쓰는 애가, 왜 갑자기 글쓰기가 싫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제목은 반만 진짜다. 누누히 얘기했듯,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글을 쓸 때마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하는 '상황'과, 글쓰기의 필연적인 속성만큼은 늘 싫었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약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문학시간, 나는 윤동주의 시를 유독 좋아했다. 신기루같은 이상향에 손을 뻗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모양새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생각은 많지만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그래서 괴로운 마음도 공감됐다. 국어선생님께선 "윤동주는 늘 후회만 해."라고 하셨다. 틀린 말은 아닐테다.
<쉽게 씌어진 시>와 <참회록>에 투영된 윤동주 본인은 끊임없이 부끄러워 한다. '부끄런 고백'을 한 것에 대해 자책하며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리켜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ㅡ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고도 했다.
그는 왜, 시를 썼을까?
그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걸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본다고 밝힌다. 시인, 즉 글쓰는 이는 현실의 '문제'에 직접 짱돌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자신의 언어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윤동주는 고국으로 돌아가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도, 그렇다고 모든 걸 잊고 일제시민으로 살아갈 수도 없던 사람이었다.
사실 일제강점기까지 갈 것도 없다.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호소한다. 가족이 살해, 강간, 뺑소니 당한 사례만 해도 수도 없이 많다. 왜 그들은 국민청원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었을까? 그건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강자'였다면 어땠을까? 대단한 재력가의 아들이거나, 하다못해 대단한 용기를 가진 대인배였다면? 그랬다면 시를 쓰는 대신, 세상에 직접 대고 소리쳤을 것이다. 일제는 조선 땅에서 썩 꺼지라고.
국민청원을 쓰고, 탄원서를 쓰는 사람들 역시 '마지막 수단'으로 글쓰기를 택한다. 돈이 없어 고액의 변호사를 고용해 승소할 수 없는 이들. 빽이 없어 정치권에 로비를 할 수도 없는 이들. '국민 재판관'님의 도움 없이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조차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조국 전 장관 같은 이들은, 말 한마디에 기자회견을 열어 "몰랐다"로 대변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명예훼손했다는 혐의로 수많은 이들을 고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풀뿌리' 들은 '말'을 할 수 없고, 애써 입을 열어도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생각의 출발은 개인으로서의 경험이었다.
일하던 당시, 부조리함을 수없이 경험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회의시간은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입이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개선하고 바꿔야 할 것이 넘쳤지만,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단 두개 뿐이었다.
1) 받아들이거나 2) 조직에서 나가기
그렇게 철저히 약자로 존재하던 내가 할 수 있던 건 글쓰기 뿐이었다. 집에 오면 블로그에 글을 썼다. 회사에서 겪은 힘든 일, 부당함, 내가 느낀 감정들을 조목조목 써내렸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다음 날 해가 뜨면 출근했고, 회의시간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사 앞에서 내가 하는 유일한 말은 "네"와 "알겠습니다" 였다. 가끔 질문을 할 때마저 말을 고르고 골라야 했다.
슬프게도 가정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준비생인 나는 냉정히 말해 집에 '얹혀' 사는 입장이다. 부모님의 말 또는 행동에 부당함을 느껴도 터놓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내게 돌아오는 말은 "싫으면 네가 나가"라는 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일을 겪은 날은 입과 귀를 닫는다.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나의 마음을 문자로 토해낼 뿐이다.
슬픈 사실이 있다. 약자에겐 글쓰기마저 조심해야 할 행동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초래한 상대와 '대면'하지 않기에 비교적 안전하긴 하지만, 그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당사자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일이 닥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가여운 글쟁이, 윤동주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동주는 영문과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에서 옥사했더랬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은 그가 죽은 지 3년 후인 1948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일지는 언제쯤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약자가 아닌, '목소리'를 가진 계층에 속할 때쯤엔 가능해질까. 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면 글이 아닌 '말'로 내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
언제쯤, 비로소 '언어'를 갖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