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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Sep 05. 2023

친구들이 자꾸 선물을 보낸다. 심지어 용돈도.

'친구'가 보내는 '선물'이라는 라이팅

최근 선물을 보내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대부분 꽝이더라고요..


친구가 선물을 보냈으니 선물함에서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면 선물은 없고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룰렛'만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화를 내며 화면을 종료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눈앞에 예측 불가능한 행운의 기회가 있는걸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이득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쉽게 중독됩니다.


일단 룰렛 화면으로 진입한 이상 누구나 레버를 당기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설령 꽝이 나와도 조금 아쉽지만 아쉬움을 달랠 방법은 있습니다.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거든요. 다른 친구에게 공유를 하도록 해서요.


이 부분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마치 다단계와 같은 이 과정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은, 친구에게 '선물'을 보낸다는 이 워딩 덕분입니다.


친구에게 초대링크를 보내고 다시 도전해 보세요.
친구에게도 알려주고 다시 도전해 보세요.
친구가 내 링크를 누르면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라는 문장이 주는 어감과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보세요.
친구에게도 당첨의 기회를 주세요.

라는 문장이 주는 어감이 다릅니다.


워딩을 덜어내고 본질만 놓고 보면, 사실 분하기 그지없는 이벤트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기껏 어플을 켜게 만들어놓고 나도 다른 사람을 끌어오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주변에 공유를 하는 것까지 해서 여정을 종료할 겁니다. 누군가 내 링크를 눌러서 한 번의 기회가 더 생기면, 그때 다시 접속을 할 수도 있겠네요.


토스입장에서는 한번 화면에 진입하도록 하면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도록 노려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 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브랜드콘의 사용을 촉진하기 좋은 이벤트입니다. 브랜드콘의 이용 기간이 아주 짧거든요. 하루이틀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공짜로 얻은 츄파춥스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유도를 해보려면 사용자가 어플에 접속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접속하는 사용자를 활성 사용자라고 하고요, 한 달에 활성 사용자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지표를 MAU(Monthly Active User: 월간 활성 사용자)라고 합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를 하는 분들에게는 중요한 지표인 것 같더라고요.


활성 사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쉽게 말해 어플에 접속하는 빈도를 높이기 위해 알람을 뿌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알람에 대한 UX라이팅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고요. 하지만 라이팅 전에 사용자가 그 워딩을 만나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어떠한 이득도 전해주지 못하는 알람은 소음에 불과합니다.


라이팅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도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쓰레기를 배달받을 뿐인 거죠. 실제로 개인 한 명이 하루에 받는 알람은 적어도 수십, 많은 분들은 백개가 넘어갈 거거든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런저런 알람을 하루에 60번 정도 받는 사람이라면 6분에 한 번 꼴로 휴대폰이 울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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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선물보내기'라는 워딩은 이런 류의 스팸메시지를, 사용자가 직접 친구에게 공유하게 만들어줍니다.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보다, 친구에게 무언가 보내주었다는 점이 앞으로 드러나거든요. 기업의 홍보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묘한 불편감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무얼 받았는지 아님 꽝인지는 그다음문제고요. 그런 점에서 선물을 보내게 해 주겠다는 토스의 워딩은 당돌하게 느껴져서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선물을 넘어 용돈이라고까지 합니다.



돈이 사라진대요. 문자로 받은 스미싱이어도 혹하는 표현입니다. 하물며 내가 공유하는 걸 넘어서, 공유해 달라고 요청을 하도록 하는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용돈을 더 벌고 싶어서'니까요.


사실 UX라이팅 하면 너무 여기저기서 토스만 언급해 주는 것 같아서, 저는 하기 싫은 묘한 반항심리가 있었는데요. 자꾸 눈길을 끄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워딩은 '친구'인 것 같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요. 카페의 백색소음을 뚫고 귀에 꽂히는 말이 있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준비되었습니다~!"


닉네임을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설정하셨나 봐요. 중후한 남자분이 받아가시던데.. 따님이 설정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면 편견일까요?


호칭과 호명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요즘 어플 첫 화면에서 이름을 부르는 서비스들이 종종 보입니다. 특히 은행어플들이 그렇고요. 스타벅스는 '원하는 사람에게만' 불리고 싶은 이름을 설정할 수 있게 해 주고요. 저는 여전히 A-17번 고객님 정도로 불리길 택했습니다. 그게 편하거든요. 말하고 보니 아예 닉네임을 "A 다시 17"로 해놓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보자면.. '그럼 친구 공유 이벤트를 친구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미 쓰인 글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백지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그리 당연하게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주변에 알려주기'라고 수도 있고, 아예 대상을 빼버리고 '공유하기'라고만 써도 되거든요.


'친구'에게 '선물'하기라는 워딩으로 거부감을 두 번 낮출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공유하기'와 '친구에게 알려주기'는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요. 사용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오히려 권하게 만드는 워딩같습니다. 다단계 방문 판매원이 아닌, 똑똑한 정보제공자의 역할을 자처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요.


주변에서 아티클 링크를 공유해 주는 일이 종종 있는데, 보통 함께 쓰이는 문구는 '확인해 보기'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가입하고 읽어보기'라면서 가입을 유도하기도 하고요. 공유해 준 친구에 대한 감사함과는 별개로, 제목만 보고 처음 보는 서비스에 가입까지 할 만큼 읽고 싶은 글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글을 읽어보고 내용이 괜찮다면 다른 글도 둘러볼 것이고, 다른 글도 괜찮다면 꾸준히 받아보기 위해 가입할 수도 있겠지만요.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서비스가 많습니다.


그나저나, 스타벅스에서 쓰던 이 글은 결국 사무실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아이패드로 접속하는 브런치 에디터가 꽤 불편합니다. 버튼도 숨어있고, 블록 설정도 한 줄씩밖에 안되고요. 글 쓰는 플랫폼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은데, 브런치만의 장점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나름 본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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