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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진정 뒤져버린 걸까?

우리는 다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by 기획자 에딧쓴

요즘은 어떤 시대라고 생각하시나요?

딱 3초만 생각해 본 뒤 나름의 답을 떠올려보셔요.


3... 2... 1.


어떤 단어를 떠올리셨나요?

긍정적인 단어였나요?


1681899403470-vflt4oz2eir.jpg 대해적 시대 나가라. (아니야 가지 마세요)


저는 요즘이 혐오의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 인종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요즘 서로 다른 성별을 혐오하고,

서로 다른 세대를 혐오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혐오합니다.(이게 제일 위험해 보여요)


사실상 섬나라인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요.


hqdefault.jpg https://youtu.be/p8N_5VGH1xA


5년 전 영상이라고 합니다.

이미 저 때 시작되고 있었을까요?

지금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댓글 창을 열어보고서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단 하루도 없지요.

굳이 짤을 찾아오지는 않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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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커뮤 분위기]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캡처입니다.

낭만의 시대지요.


보통 '낭만의 시대'하면 한참 지나간 과거가 연상됩니다.

10년, 멀리는 20년까지 가는 것 같아요.


왜 우리의 낭만은 과거에 갇혀 버렸을까요?



SNS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실패한 몇몇의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강력범죄 사건들을 나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인구 과잉이나 밀도 같은 거시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나 인류사적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원인이야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중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의 결과가 지금이겠죠?


이 부분에서 저는 한 가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원인이 있다고 해서 결과가 필연적이지는 않다는 것을요.


무슨 말이냐면요,


살인범의 대다수가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해서,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모두가 살인범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해서 살인범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지금의 사회적 분노, 울분, 혐오, 싸움이 SNS 때문일까요?

SNS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이 SNS를 사용하지만 혐오에 잡아먹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논리학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혐오의 시대가 뭐 때문인지 가리느라 또 싸우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는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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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낭만에게 호흡기를 붙이려면

일단 이 낭만이라는 녀석이 뭔지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으레 그렇습니다.)


보통 '낭만'하면 과거를 떠올린다고 했었는데,

낭만이란 본디 지나간 과거에 있는 걸까요?


18ba6ccbd4e16415f.jpeg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 역주행하던 그 시절


아니요, 과거라고 해서 다 낭만인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때를 '낭만과 야만의 시대'라고 부르지요.


게다가, 요즘 시대에도 간혹 낭만이 살아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AKR20221020097500017_01_i_P4.jpg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낭만어부 선장님. (저는 지금도)


187eca2305d1a34c.jpg 또 많은 사람이 '낭만'을 말했던 그 짤


30930_60609_5512.jpg 환장과 낭만 사이에 사는 그


제가 나름대로 정의해 본 낭만은,

낯선 이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선장님에게 낭만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도 한 때 가슴속에 품었던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삶이라는 과제 앞에 잠시 접어둔, 혹은 잊고 살았던 그거요.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청년들에게서 낭만을 느끼는 것은

우리도 저렇게 자유롭고 싶은 답답함을 느끼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허술하고 사고뭉치인 기안84 작가님에게 낭만을 느끼는 것은,

한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순수함(혹은 천진함)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실제로 만나거나 대화를 나눠본 적 없지만,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내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일깨워줍니다.

'남'이 아니라고 느껴지지요.


이때, 우리의 낭만이 자극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26859_34743_4728.jpeg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한동안 온라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동굴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라는 고민을 한참 하고 있었습니다.


돈 버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그 너머의, 어떤 형태의, 어떤 결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큰 질문까지도요.


이 글은 그 나름의 결론 중 하나입니다.

이름하야 [낭만CPR 프로젝트](거창한 대괄호)


이 대혐오의 시대가 사실 온라인 세상에서만 재생산되고 있다는 행복회로 하에,

저마다의 마음속에 혐오 대신 낭만이 자리할 수 있는 기획들을 해보고 싶어서요.

'기획자'라는 포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면서,

정작 '내가 뭘 기획하고 있지?'라고 자문했었거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기획은 이런 건가 봅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월요일 출근길의 짜증수치를 낮춰보는 아주 사소한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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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퇴사한 이유 중 절반은 아마 출퇴근 스트레스였을 겁니다.

저는 저 붐비는 출퇴근길이 너무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저만 그렇지는 않겠지요.


저 상황이 되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싫어집니다.

내려야 되는데 문 앞에서 버팅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사람이 미어터지는데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정강이를 발로 툭툭 차는 사람,

왠지 가방을 앞으로 메지 않은 저 사람 때문에 공간이 더 좁아진 것 같고,

그렇게요.


사실 그건 그 사람들 문제도 없지는 않겠지만,

내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의 행동들이거든요.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들게 출근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유대감이 있으면,

힘들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화낼 일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요.

뭔가 쓰고 보니 저만 화내고 있었으면 어쩌나 싶긴 한데..


아무튼,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라는 게 생각보다 별게 없습니다.

풍선이 터지기 전에 바람을 빼주는 일과 비슷해요.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빼주는 데는 '정서 환기'만큼 효과가 즉각적인 게 없다고 봅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피식 웃을 수 있으면,

지금 내가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자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바람을 살짝 빼주는 거죠.


저처럼 정신 나가서 무계획 퇴사할 게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답시고 출근길 지옥철을 안 탈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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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무런 저항 없이 본능적으로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들을 찾다 보니,

이런 짤들을 볼 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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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고 귀여운 존재들.

그들을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납니다.

기분이 좋아지고, 몽글몽글해지고요.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해지는 월요일 출근길,

그때 잠시 바람 빼시라고 저런 녀석들 짤을 모아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https://maily.so/wtfmonday


저 레터 이외에도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쌓여있지만

아마도 더디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낭만이 밥 먹여 주지는 않으니까요. 허허


밥 먹여줄 프로젝트들은 별개로 진행하겠지만..

그래도 놓지 않고 해보고 싶습니다. 낭만CPR.


img.gif 그것이.. 낭만이니까.


낭만이 뒤져버린 사회, 우리는 다시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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