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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설게하기 Aug 03. 2020

스무 살, 지하철 도서관

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약속이 잡히면, 내가 상대방의 동네로 이동하는 상황이 많다. 서울 어떤 스팟에서 만나도 1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 위치에 집이 있지만 귀찮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꼭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 간다. 덜컹덜컹. 미세한 지하철 소음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책을 읽는다. 평소에 좀처럼 읽히지 않았던 책들은 왜 꼭 지하철 안에서만 잘 읽힐까? 

터널을 통과해 갑자기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빛에, 책 속에 떨군 고개를 들어 한강을 바라봤다.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12년 전 1호선 통학 지하철이 떠올랐다. 집에서부터 3시간 30분, 왕복 7시간이 걸렸던 통학거리. 내가 받은 수능 점수로 거의 유일하게 입학할 수 있었던 4년제 영화과는 충청남도 아산 역에 있었다. 자취나 기숙사에 머물지 않았던 건, 그 학교에 1초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 



영화과 특유의 전통처럼, 선배들은 툭하면 후배들을 집합시켜 험상궂은 표정으로 위계질서를 잡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들 21살, 22살...), 그 방식에 치를 떨던 동기들은 2학년이 되자마자 거의 같은 방식으로 후배들을 인사 교육 시켰다. 대부분 비속어 없이는 보통의 대화가 불가능해 보였고, 영화에 열정이 있다기 보다 편입에 만만한 징검다리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나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지 않았고, 학교 있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듯했다. 인생 최초로 한 집단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매일 금정 역에서 아산 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성균관대, 수원대, 지방대 학교 로고가 적힌 다양한 과 잠바가 언제 내리는지 눈여겨보곤 했다. 10분 만에 성균관대 과 잠바 무리가 지하철에서 내리면 그 다음엔 수원대 그리고 1시간 20분이 지나면 아산역에 도착한다. 여기가 끝은 아니고, 학교 버스에 탑승해 약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그제서야 겨우 학교가 보였다. 아무리 자도 자도 도무지 끝이 없는 통학시간. 매일 1호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이미 경쟁의 레일에서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열등감에 휩싸여, 이 거리가 인생의 벌어진 거리처럼 한없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가장 빛나야 마땅한 스무 살, 타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는 경험은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아무리 7시간 통학을 감수하고,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 해도 영화과의 특성상 밤샘 단체 작업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마주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의 서늘한 눈빛,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말들과 행동. 나는 학교 입구에만 가도,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급기야 학교에 머무는 내내 온몸의 근육이 긴장되면서 학교 밖에서도 계속 심장이 뛰었다. 학과 사람들을 마주치기만 하면 삐- 하며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하고, 왼쪽 시각이 고장 난 텔레비전의 파형처럼 왜곡되어 보이며, 사람들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인지되지 않아 “죄송한데, 방금 무슨 질문을 하셨죠?”라는 말을 세 번씩 반복하기 시작했다. 



몸은 정직하게 “너와 이 환경은 잘 안 맞아, 도망쳐!”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퇴하거나 정신과에 가서 치료받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 기록이 남으면 인생에 거대한 불이익이 올 거라는 부모님의 만류와 그 말에 쉽게 겁이 질려버릴 정도로 스물 한 살의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또 나에게 대해서도 전혀 확신이 없었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온몸이 고장나 버린 그 시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단 몇 시간 만이라도 타인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내가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아주 단순한 삶의 감각.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 안, 갑자기 욱하고 올라오는 충동에 가방 안에 무심코 넣어둔 헬스클럽 전단지와 슈퍼마켓 전단지를 꺼내 거기에 있는 활자들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잠깐 환승하는 사이, 지하철 슈퍼로 달려가 거기에서 있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거의 걸신들린 사람처럼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인생에 처음, 자발적으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책 속의 한 문장을 샤프로 쭉 그었다.   



 그 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건만 자신이 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빨리 정릉 그 산꼭대기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짧은 두 문장 속에는, 누군가도 나와 다르지 않은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안과 이렇게 비참한 순간 속에서도 시절의 아름다움은 늘 내 곁에 존재한다는 것, 단지 내가 그것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지금 감각하고 있는 현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낙관들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묶여 있었다. 

 문장을 읽는 순간, 지하철 창문을 통과해 정수리로 쏟아지는 햇빛의 기척에 고개를 드니 분홍색 벚꽃 나무의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무표정한 얼굴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온 우주가 나에게 살아내라고 응원을 보내오는 것 같았다. 



 답장을 적고 싶었다. 나를 응원하는 문장들과 풍경을 발견할 때마다 공책과 모나미펜을 꺼내 알수 없는 발신자를 향해 회답의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나도 너와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노라고, 어떤 순간과 풍경 속에서 기어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는지와 어떠한 슬픔이 찾아와도 지금을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매일의 다짐들을 빽빽이 적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답장을 보내는 핑계로 내 얘기를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이후로 대학 4년 동안 지하철 1호선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읽고 노트 20권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답장의 묶음 속 몇 개의 문장을 골라 목소리를 녹음하고, 영상과 한글 자막을 입혀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 나는 졸업자 중 유일하게 혼자 졸업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작품은 그 해 대표 졸업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가끔 인터뷰를 통해 “자신만의 창작 스타일을 찾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싶나요?” 라는 거창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 창작? 사회적 메시지?... 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상을 만들 때마다 1호선 아산행 지하철을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린 텅 빈 지하철에 혼자서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애를 생각합니다. 그 여자애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보여주고 싶은 세상의 풍경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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