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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설게하기 Oct 16. 2020

정반합

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나는 땅 밑에 홀로 누워 카메라를 바라보며 끝없이 갈등합니다. 호랑이를 보고 싶은 욕망과 얼른 돌아가서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고 싶은 욕망과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이냐고 절규하고 싶은 순간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사생활의 천재들, 박수용 (자연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中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저자 박수용은 1995년부터 20여 년 동안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촬영한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감독님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며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야생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영하 30도의 추위에서 얼어붙은 주먹밥 300개를 녹여 먹으며 6개월 이상 잠복했다는 사실이었다. 야생 호랑이를 관찰하며 배운 자연의 교훈을 도시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소위 개고생. 

물론 감독님 만큼의 인내와 고통은 아니겠지만, 빠르고, 크고, 화려함만을 주장하는 한국 도시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또 다른 삶의 선택지를 제시하고자 몇 년간 시골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부지런히 담아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카메라를 드는 바람에 어깨와 허리의 통증, 두통을 달고 살며 몇 주가 흘러도 별다른 상황이 생기지 않아 허탕을 친 것 같다가도 갑자기 마법 같은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되면 몇 개월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변태같이 아름다운 직업. 그 순간을 만끽해 본 사람만이 아는 희열. 내가 뭔가 되게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 몸은 잠시 지칠지라도 영상을 찍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삶에 대한 모든 비유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아마 야생 호랑이를 촬영했던 박수용 감독님의 마음도 비슷한 것이었겠지? (라고 혼자 상상)



 사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건, 영상을 찍기 위해 견뎌내야 했던 인내의 시간이 아니었다. 영상을 찍고 돌아온 후의 일상이었다. 집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집의 존재는 사라진다. 그게 나를 오랫동안 고독하게 만들었다. 일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전혀 다른 2종류의 친구들이 있다. 지나치게 도시적인 사람들과 지나치게 자연적인 사람들. 내가 영상에 담아내고 싶은 삶은 소박하고 정감 가는 시골마을에 있지만, 그 영상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시스템과 자본은 도시에 있었다. 아무리 탈 세속적인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라도 제작비를 타기 위해서 나를 돕고 있는 스텝들의 삶에 곤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혹은 무너진 나의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틀림없이 다시 제 발로 도시의 시트템 안으로 걸어들어가야만 했다.



몇 달 전 선배 M의 영화 개봉을 축하하기 위해 동료 작가, 감독들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누가누가 더 빚이 많은지에 대해 돌아가면서 말했다. 그들 모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잊혀가는 사회에서 집요하게 삶 만을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농담으로 불행한 어느 구석을 허허하며 웃고 털어버리려 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삶을 희생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다. 어째서 몇 달 사이에 네 얼굴은 더 상해 보이는 거니. 어째서 네 얼굴에는 더 깊은 그림자가 생긴 것만 같니. 어느덧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난...사실 빚은 없어” 


“맞다 ~ 송미는 영상 스튜디오도 하잖아~ 우리랑은 달라. 

너 상업 광고할 때 꼭 우리도 써주라. 제발” 


“너네 같은 대단한 애들을 어떻게 그런 촬영에 불러...”


“송미야, 별로 대단하지 않아. 진심이다...”



 불과 어제 스탭으로 참여한 광고 촬영 현장이 떠올랐다. 인터넷에 떠도는 4,5개의 레퍼런스 영상을 조잡하게 섞은 광고 영상 1편의 견적은 2시간 40분짜리 내 다큐 영상의 가격보다 더 비쌌다. 광고 촬영 현장에 세팅된 최고급의 영상 장비들과 그 장비를 다루는 더 이상 예술을 꿈꾸지 않는 예술 학교 출신의 스텝들 그리고 그들에게 시종일관 무례하다가도 상사 앞에서는 태도를 바꾸는 클라이언트.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고 극도의 효율을 위해 사람이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전형적인 분위기. 그 클라이언트가 나에게 말했다.

 


 “송미씨 창작물 많이 하잖아? 내가 그거 높이 사서 같이 하는 거예요”



 웃으며 기분을 맞추지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재미도 의미도 없지만 적어도 돈 하나는 확실히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로 나는 친구들보다 사회에 닳고 닳은 사람이니까. 이게 있어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절대로 이 촬영 현장에 사랑하는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다. 차라리 거기서 번 돈으로 우리가 만날 때마다, 치킨과 맥주 값을 내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너무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도시의 규칙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결국 내가 얻은 건 도시의 상업 영상이었네? 

 


근데 얘들아, 이것도 뭔가 정답이 아닌 것 같아.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걸어가야 하니, 멈춰야 하니. 누가 정답 좀 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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