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까?
창작 예술에 맛이 들린 나는 정말로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 직접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어졌고, 그 각본을 토대로 장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점점 현실적이지 못한 길을 제 (?) 발로 걸어들어가는 나 스스로가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영화과를 졸업한 나지만, 영화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 싫었다. 이를테면 각종 독립영화에서 그려지는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퀴퀴한 방구석에서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고 줄담배를 퍽퍽 피우며 타자를 치고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모습. 물론 요즘 영화인들은 이전보다 임금도 제대로 받고 멀끔한 차림에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직업은 뭐랄까 '생계'라는 카테고리와는 너무 먼 이미지가 강했다.
2년 전 장편 다큐멘터리를 완성하자마자, 그 수식어에 대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바로 상업 작업판으로 뛰어들었다. 머리는 자꾸만 내 나이에 맞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창작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저마다의 존재적 가치를 영상으로 증명하는 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 정도의 의미는 갖춰야 하지 않느냐고 깊은 내면 안에서 소리쳤다. 모든 일을 정리하고 장편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 후, 시나리오는 중간 이상을 넘어왔고 한 달째 워드 10포인트, 67페이지에 머물러 있는데, 용을 써봐도 당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행동력도 빠르고 꽤 성실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나인데 시나리오는 성실성과 행동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미지의 세계가 있는 것만 같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자마자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씨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난 아닌데? 난 아닌데? 그건 아마추어나 그런 건데?”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진짜로 어쩌면.... 이게 핑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에게 요즘 시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거 중간 지옥이네” 하며 정지우 작가님의 글 한편을 보내
왔다.
결국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이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떤 일에서든 슬슬 중간의 지옥이로군 하는 걸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달릴 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사실 그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음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상실의 늪을 헤매는 것 같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에 아주 쉽고, 중간 과정을 넘기는데 남들보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예민함을 가지는 사람이다. 중간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하는 권태감을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어 너무나 산만한 사람이 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늘 성인 ADHD가 아닌가 의심한다. 한 줄 쓰고 물 뜨러 가고, 한 줄 쓰고 슈퍼 가서 과자를 사 오고, 한 줄 쓰고 유퀴즈온더 블록 보고. 그렇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스스로에 대한 말 못 한 자괴감이 눈덩이처럼 쌓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징징거리며 우정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야 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사실 은근하게 믿는 구석이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이렇게나 온갖 야단 법석을 떨지만, 늘 다음날이 되면 노트북을 여는 행동을 반드시 할 거라는 걸 안다. 이건 좀 자랑이지만 이때껏 살아오면서 내가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에는 중도 포기 없이 거의 다 마무리를 맺어오며 살아왔다. 만약 내가 시작하고 마무리 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면,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부수적인 일들일 가능성이 높다. 각자도생과 귀에 좋은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 가족들도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엄청나게 흔들리면서도 어쨌든 늘 해내긴 해내더라”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불안함과는 별개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해냈던 순간들이 나의 근원적 믿음이 된 건 사실인 것 같다.
살면서 꼭 한번 이뤄보고 싶은 것에 대해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무수하게 보았다. 그 일을 시도하다가 마음 편한 쪽으로 도망가는 사람들도, 멀리 빙 돌아가는 사람들도, 심지어 그걸 포기하는 것에 별로 자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 반면 자신이 진짜 욕망하는 것에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는 몇몇의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이 내놓은 멋지고 깔끔한 결과물과 달리 그들은 나만큼이나 두부 멘탈을 가졌고, 너무 많이 검열하고 자책하고 외로워하고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고 계속 같은 것을 시도하는 삶에 지긋지긋함을 느끼지만 집착적으로 한길만을 쭉 판다.
의외로 후자보다 전자 쪽이 훨씬 더 안정적인 정서를 가졌고 신체적 상태나 균형 잡힌 영양섭취라든지 취미 활동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 자신의 꿈을 쫓는 것과 쫓지 않는 것 중 그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만큼 꿈을 쫓는다는 것은 '자학'의 어느것과 맞닿아 있다.
과거, 이뤄냈던 것들의 중간 지옥을 넘어 갈 때를 떠올리면 스스로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 있다. 왜 한 가지에 몰두하느라 매번 밥을 그렇게 대충 차려 먹었는지, 왜 그렇게 목 다 늘어난 티셔츠만 입고 다녔는지, 왜 집을 휴식의 공간으로 쾌적하게 조성하지 않았는지, 왜 주기적으로 어깨 스트레칭을 하지 않았는지, 남들 다 휴가 떠날 때 편집실에 박혀 있었는지.
그건 어떤 목표지점 하나를 찍고 너무 과몰입 한 나머지 그것에 도달하기 전의 날들을 과정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의 결과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결과도 무수한 과정 중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 중간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내느냐에 따라 이걸 뚫고 난 이후 스스로가 편한 존재가 될지 더 강박적인 사람이 될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 순간에도 다짐한다. '자학하지 말자. 절대 자학하지 말자.'
그 다짐 덕분일까. 여전히 어딘가 강박적인 구석이 있는 나지만, 2년 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는 것을 느낀다. 매일 이불을 개고, 방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깔끔한 옷을 꺼내 입고,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노트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비록 여행을 떠나서도 늘 불안해하지만...! 일단 떠난다.) 매일 일기를 쓰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시 일을 쉬기도 한다. 그 결과 노트북에 앉을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여전히 시나리오를 쓰는 건 존나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존나라는 단어 외에는 생각나지 않을 만큼.
허나 확실히 그 고생을 상쇄할 만큼 (?) 이 과정은 어딘가 신비한 구석이 있다. 내가 오늘 어떤 걸 먹느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날씨를 맞았느냐에 따라서 미세하게 이야기의 디테일이 달라진다. 우주와 세상이 주는 예측 불가한 에너지와 나라는 존재가 만나 이루어지는 이 신비스럽고 고생스러운 일을 난 꼭 완성해내고 싶다. 아 역시 나는 자학적인 인간이 맞나봐. 그래도 이왕이면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해내고 싶다.
아아, 시나리오와 내 생활이 나란히 흘러간다.
나는 과연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