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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아빠 Oct 24. 2023

후배로부터 '하사'받은 <목민심서>가 말을 걸어오다

자존심을 버리니 보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

  직속상관과 직급이 같았던 적이 있었다. 흔하진 않지만 이런 관계는 여러 조직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직장에는 상사보다 연배나 경력이 많지만 승급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한직이나 '말년'을 위한 직책이 존재한다. 그 당시의 내 경우도 비슷했다. 내가 조직 체계에서 부하였지만, 그와 나는 같은 직급이었고, 경력면에서는 내가 오히려 '선배'였다.

  사실 자기의 부하로 선배를 모시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하급자 대하듯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나도 그의 권위와 입장을 나름 고려해 항상 존댓말로 대하는 등 예의를 갖췄고, 그가 부서를 지휘하는데 누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존대하던 말끝이 희미해져 갔다. 말은 물론 행동에서 직장과 인생의 선배를 대하는 태도는 사라졌다. 직장 생활이 20여 년이나 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수평적인 관계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신뢰와 동질감으로 인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서로가 자연스레 편하게 행동하게 되며, 이는 업무와 인간관계 모두에서 득이 된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말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그런 느낌이었다. 혹여나 혼자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가. 그가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무렵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 간간이 나를 '디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비록 물증은 없었지만, 그가 나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가 타인의 입에서 나올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나에게 '선배, 요즘 이런저런 말이 돌아요'라고 자신이 한 말을 마치 남에게서 들은 것인 양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기까지 했다.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아, 그래요.....'라고 할 뿐, 그 날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권의 책을 보내왔다. 그 유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그것이었다. 책의 커버를 넘기자 인쇄된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규모가 있는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면 높으신 분들 부하들에게 책을 줄 때 붙여놓는 그런 문구이다. '존경하는 000님께'로 시작하는 글귀는 '이 책은 … 마음속에 깊이 새겨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훈계로 끝맺고 있었다.
  사실 이런 색을 한 두 번 받아본 것은 아니다. 회장님,  사장님 같은 높은 분들이 주기적으로 '뿌리는' 것을 여러 번 받아보았고 책장에 방치된 것도 아직 몇 권 있다. 직책상으론 상관이지만 같은 직급에 경력도 나보다 늦은 후배에게 '훈계'가 담긴 책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묘하다는 표현은 매우 완곡한 표현임을 짐작하시리라. 게다가 그는 사장님만큼 높은 직급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의 독선적이고도 감정적인 업무 스타일은 대다수의 조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기에 훈계가 담긴 그 글은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 '종이 쪼가리'를 뜯었다. 그리고 재활용 수거함에 넣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팔아서 커피라도 한 잔 사 먹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중고 매입가가 겨우 1,400원이라서 그것도 포기했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읽는 것 밖에는.

  '활자화된 것'이라면 만화책이건 야한 소설이건 뭐든지 나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읽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책을 준 그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지라 이 책을 읽는 나의 태도는 평소 독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강한 분석의 시선으로 읽었다. 말이 좋아 분석이지, 토씨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온갖 메모를 해가며 말이다.

  "어이, 정약용, 너는 그렇게 생각해? 그건 아닌 것 같아. 백성을 기른다는 <목민>이란 제목부터가 틀려먹었어. 백성은 우매하고 너는 그렇게 똑똑해? 만인은 평등한 거야, 너는 오만과 아집에 빠져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낮고 비천한 존재라고? 그 시대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요즘 같으면 여혐은 물론 시대착오적 특권의식으로 한 방에 훅 갔을 거야."

 책에게 한바탕 퍼부었다. 시비를 걸고 독설을 퍼부었다는 편이 더 적당하겠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약용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온갖 모략과 중상, 권모술수 가운데서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은 그가 말이다. 18년간의 긴 유배시절을 감내하며 주옥같은 많은 책을 남긴 그가 말이다. 그런 정약용 선생은 어느새 서당의 훈장님이 되어 있었고, 학생인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 분하고 자존심 상하지? 이해한다. 가소로운 녀석이 깝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신경질 나니? 그런데 나도 사실 그런 경험을 좀 당했었어. 좀 많~이 당했지 ㅋㅋ, 12년의 관직 생활에 18년 유배생활을 했으니 좀 많지? 썩어빠진 나라에 통탄하고 누명에 억울했었지. 심지어 나라를 위해 연구한 다양한 국제적 학문을 시비 삼아 사형까지 언도받았었잖아...

그런데 유배지에 내려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화낸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더라. 역사를 배우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니? 그 당시에 온갖 권모술수로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그들이 오늘날엔 어때? 여전히 추앙받고 있어?
  

  아니야. 결국 역사는 공명정대하게 평가하게 되어 있어.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너를 위하고, 네 이웃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야. 책 읽고 글 쓰고, 얼마나 좋아? 물론 내 글이 좀 부족하지? 세상이 많이 변했잖아. 하지만 내 시대에서는 나도 혁신적이 되기 위해 나름 노력했었던 점은 이해해줘. 책 속에서 나름 Cool한 면이 보이지 않니?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배울 점이고, 변하지 않는 가치와 정신도 배울 점이지. 아무튼 책을 버리지 않고 읽은 것은 정말 칭찬할 점이야.

  정말 고마워~. 그리고 혹시 내 글에서 이치에 안 맞거나 반박할 점 있으면 얼마든지 드루와, 드루와.”

  '누구나 누군가의 선생이다'라는 말은 쉽지만 어렵다.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상대방을 선생으로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하는 과정만 통과하면 일은 쉬워진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훌륭한 스승은 책이다. 책에는 지은이의 인생과 고뇌가 담겨 있다. 물론 거짓되고 질이 좋지 않은 책도 부지기수인 것은 사실이다. 요즘은 오히려 좋은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러한 책에도 배울 점이 있다.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유추하는 것도 배울 점이다. 나아가 이런 저질의 책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돈 때문인지, 정치적·사회적 이유인지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읽을수록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별하는 안목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역사적으로 거듭 평가되어 왔고, 그 가치가 점점 높아져 가는 <목민심서>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그 좋은 책의 저자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좋은 스승 하나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일인가? 트집과 딴지로 시작된 나의 건방진 독서 자세는 어느샌가 다소곳한 ‘궁서체’의 자세로 변해 있었다. 열심히 줄을 그어가며 말이다. <목민심서 > 속에서 성경 > 말씀이 보인다. <소크라테스>도 있고 <손자병법>도 있다. <목민심서>를 통해 만난 정약용 선생은 책에서 말한 새로운 지혜를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정약용 선생은 계속 내 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과 해석을 지도할 것이다.

정: “한 마디만 더 할게. 아마 너에게 책을 주 걔는 그 책 안 읽었을 거야 ㅋㅋ. 게다가 앞으로도 안 읽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고 살겠지. ^^
그런데 있잖아, 걔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네. 그러니까 걔한테도 배울 점이 있을 거야, 잘 찾아봐.”

나: “싫은데요.”

정: “분명 있을 텐데 ~ "

나: "18년 후에 생각해 볼게요."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책의 커버 뒤에 그 ‘종이 쪼가리'를 다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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