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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아빠
Oct 24. 2023
가족 낭독회
온 가족이 함께하는 독서, 교감과 배려를 배우는 시간
이번 겨울방학 우리 가족은 한 권의 책을 정해서 매일 30분씩 돌아가며 낭독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른바 '가족 낭독회'이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까지 네 식구이니 각각 7분 30초씩 읽는 것이 규칙이다. 첫 책으로는 그 유명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골랐다. 일단 첫 시도인 만큼 책의 선정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고, 아내도 선뜻 동의해 주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도 선선히 따라와 주었다.
그동안 아빠가 읽어주는 것에 익숙했던 만큼 아이들도 듣는 것에는 저항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읽는 것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7분 30초, 사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켜 놓고 돌아가며 읽는 동안 아이들은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 나는 아이들의 낭독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나의 낭독 시간을 좀 더 길게 하곤 했다. 하지만 가족 낭독회의 날이 더해갈수록, 그리고 어린 제제와 밍기뉴, 그리고 뽀르뚜가 아저씨의 삶에 충분히 빠져들어 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은 스톱워치의 존재를 점점 망각 하였다.
가족 낭독회를 통한 여러 가지 소득이 있었다고 느낀다. 첫째, 듣는 사람을 위한 명료하고도 또박또박하는 발음이다. 큰아이가 문장의 흐름 없이 그저 빨리 읽는 것에 작은아이는 “형아 좀 천천히 읽어"라고 했고, 웅얼거리는 작은아이의 발음에 큰아이는 "야, 좀 또박또박 읽을래?”라고 말하며 서로가 낭독의 전달력을 높여갔다. 둘째,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을 통한 성대모사이다. 5살 제제의 말은 귀여운 남자아이처럼, 뽀르뚜가 아저씨는 다정한 할아버지 목소리로, 새침데기 큰 누나는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로, 다정한 둘째 누나는 다정한 여성의 목소리로 등 등장인물의 성별과 나이, 그리고 성격을 낭독에 반영하게 된 것이다. 비록 가족 모두가 각기 다른 목소리의 제제, 뽀르뚜가를 표현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목소리를 이해했고 익숙하게 느꼈으며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밖에 아이들이 1920년대 브라질의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대화의 소
재가 된 것도 가족 낭독회의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 데 비해 동시대의 브라질은 뽀르뚜가 아저씨의 자동차, 그리고 망가라치바라고 불린 기차가 이미 대중적이었던 점을 통해 양국의 사회경제적 차이를 느끼고 서로 이야기하
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따뜻했던 순간은 책이 몇 페이지를 남기지 않았던, 스토리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읽을 때였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찡했던 순간, 바로 제제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 뽀르뚜가 아저씨가 기차사고로 사망한 대목 말이다. 하필이면 우리 가족 중 가장 감성이 풍부한, 그리고 홍일점인 아내가 그 대목을 읽다가 목이 메기 시작했고, 이내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았다. 이때 다정한 큰아이가 말없이 엄마 손에 들린 책을 가져다가 이어 읽기 시작했고, 그 사이 작은아이는 엄마에게 티슈를 건넸다. 서둘러 에피소드가 끝나는 단락까지 읽은 큰아이는 동생을 데리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내를 안고 등을 쓸어주었고 안정이 될 때까지 아내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서는 다양한 지평(地平)과의 만남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감정을 공유하게 하며 배려심을 확장시킨다. 먼저 책을 읽는 나는 책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 책의 저자는 나와 다른 경험과 문화의 배경에서 그 책을 저술했기에 나는 책을 읽음으로 인해 저자라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된다. 이제 나의 세상, 즉 나의 지평은 이전보다 넓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알고 있던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과, 책의 내용과 저자라는 새로운 세상을 존중하는 배려심이 요구된다.
혼자 읽는 독서도 그러할진대, 여럿이 함께하는 독서는 어떠하겠는가? 그러한 점에서 가족 낭독회는 책의 내용과 저자,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지평이 서로 다중적으로 접촉하는 만남의 장(場)이다. 한 지붕 아래 산다고 하지만 각자의 방, 직장과 학교라는 서로 다른 공간은 물론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고유한 지평을 가진다. 가족 낭독회는 이처럼 서로 다른, 각자의 고유한 지평을 교류하고 공감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했던 친구 뽀르뚜가 아저씨를 잃은 제제의 슬픔을 아내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다. 더 많이 슬피했던 엄마의 심정을 이해했던 큰아이는 엄마가 더 이상 낭독하는 것이 어려울 것을 배려하여 엄마 손에 들린 책을 받아들었고, 작은아이는 눈치껏 티슈를 엄마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엄마의 감정 정리를 위해 자리를 피해 준 것이다. 누가 가르친다고 되겠는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자연스러운 소통과 교감으로 우리가족은 서로를 새롭게 이해하고,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생전 대화가 없던 사람들이 '자 이제 대화를 좀 하자'라며 마주 앉았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 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그럴 때 우리는 취미 등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동호회와 같은 모임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관심사를 매개로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책은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손쉬운 매개가 된다. 특히 가족 모두의 목소리에 서로가 귀 기울이는 가족 낭독회는 책이 주는 감동을 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가족을 보다 가족 되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됨을 깨닫는다.
엄마의 눈물에 다정하게 배려해준 아이들의 행동에 아내는 상당히 감동했었나보다. 하지만 이후 나에게만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여자친구나 며느리에게 그렇게 다정하게 해주면 나 엄청 질투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