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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아빠 Oct 24. 2023

한 놈만 걸려라

                                                                                                                                                       2022.2.2.   


  대다수의 액션 영화의 주제는 복수이다. 비단 액션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드라마·소설·만화·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크고 작은 복수의 통쾌함을 즐기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세상이 공정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부당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억한 심정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간다. 


  나라고 해서 다를 바가 있겠는가. 하지만 처음 군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여느 사회 초년생처럼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을 판단할 정신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매주 한두 번은 철야 당직근무를 해야 했고(그렇다고 다음날의 휴무는 꿈꿀 수도 없었다.) 각종 훈련, 야외 숙영, 밤에는 회식, 그리고 업무에서는 빈번한 폭언과 욕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당함이 많았었다. 당시 사회가 그랬듯 군도 그랬었다. 만약 지금 나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당장에 신고할 텐데 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의 상관이 나를 호출하여 올라갔더니 그야말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을 정도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의 상관은 내 부하들을 포함해 여러 부대의 병사들을 전부 모아 놓고 교육을 하는 중이었다. 그가 보기에 나의 부하의 태도가 삐딱해 보여 지적을 하였더니 반응이 불손하고 오히려 자신을 째려보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상관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의 부하는 온갖 기합 - 고문에 가까운 - 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상관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발에 걸리는 대로 걷어차는 질풍노도의 광분을 발산하고 있었다. 30년 경력의 행보관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그저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없었다. 온갖 파괴행위를 통해 자신의 ‘열받음’을 한참 동안이나 더 발산한 후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한 행정반의 한가운데서 상관은 내 부하에게 반성문 작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아니, 그런 줄로 알았다. 일단은 나름 억울하고 부당함을 호소하는 나의 부하를 위로하고는 함께 반성문을 정성껏 작성하였다. 진심은 아니더라도 그를 감화시킬만한 온갖 미사여구와 또박또박 적은 단정한 글씨의 반성문을 들고 그의 사무실을 두드렸다. 따뜻한 차는 한 잔 못 줄지언정 차분한 훈계로 상황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성문을 받아 든 상관은 보지도 않고 갈기갈기 찢어서 집어던졌던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기억에서 희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산산조각 찢겨진 반성문 조각들이 내 눈앞으로 날아들며 흩어지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슬로비디오 장면처럼 뇌리에 각인되었고, 이후에도 잊혀질 만하면 다시 떠오르곤 했다.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상관이지만 이와 같은 폭력적이고도 모욕적인 언사에 부당함을 느낀다.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하겠다.’라고 직접 말했을까? 상관 앞에서 대놓고 말하긴 좀 그러니 조용히 신고했을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는 나를 매우 싫어하고 나에 대한 험담을 여기저기에 퍼뜨리는 선배였다. 오히려 그의 치부를 상당수 알고 있었음에도 함구하였던 나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 그 선배가 퍼뜨렸던 - 나에 대한 험담에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 선배가 어느 날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마치 맡겨 놓았다는 투로, 얼른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이다. 웬만하면 도와주겠지만 당시 나도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죄송하다고, 다음엔 꼭 도와드리겠다고 정중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지만 그는 내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지, 이해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이나 전화기에 대고 쏟아내는 분노를  -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 온몸으로 흡수한 나는 정신없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다시 그 선배의 전화가 걸려왔고 새로운 욕이 쏟아져 나왔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ㅅㄲ가 어디 선배보다 먼저 전화를 끊냐!” 가 그 이유였다. 사실 한참 동안이나 전화통을 붙잡고 온갖 폭언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상태여서 먼저 끊는 줄도 몰랐다. 물론 전화예절상 상급자가 전화를 끊는 소리를 확인한 후 전화를 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요즘 전화를 누가 먼저 끊었다고 흠이 되거나, 그것을 대놓고 지적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그리고 당시 그는 나와 동등한 계급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으면서, 그것도 무리한 부탁을. 나에 대한 험담을 앞장서서 하고 다니는 그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석연치 않은 - 다소 비정상적 방법을 통해 취득한 학위를 공공연히 과시하였던 그가 말이다. 만날 때마다 나를 과도히 하대하고 무시했으며, 어떻게든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갖가지 조롱으로 괴롭혔던 그가 말이다.

  다시 욕설을 듣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한마디 했다. 선배는 후배에게 하나라도 도움 준 적 있느냐고, 도저히 여건이 안된다는 설명이 이해가 안 가냐고, 고작 전화 먼저 끊었다는 것으로 꼬투리 잡냐고.. 선배 너무한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의 나에 대한 험담, 공개적 모욕과 무시 등에 대해선 차마 언급할 수 없었다.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었기에 겨우 그만큼이나 대응을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과는? 굉장히 무리해서 선배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는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획득하는 인간이었다. 그러기 위해 주위 사람을, 특히 후배를 이용해 먹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화를 삭이고 푸념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곧바로 전화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녹음파일을 가지고 신고하였을 것이다. 

  쌍욕을 하며 반성문을 갈기갈기 찢어 던졌던 상관, 나에 대한 험담을 앞장서서 하면서도 무리한 도움을 요청했던 선배, 요즘 들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다. 그리고는 되뇐다. 


“한 놈만 걸려라”


  쿨하게 대응할 것이다. 꼼꼼히 기록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신고하여 엄정한 처벌을 받게 할 것이다. 요즘같이 직장 내 신고가 투명화되고 처리가 엄정해진 상황이라면 그들은 ‘경고’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한동안 타깃을 찾았다. 한 놈만 걸리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해 지난 설 연휴의 첫날 후배로부터 장문의 카톡 새해인사를 받았다. “존경하는 선배님...”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세상에. 나를 보고 존경한다니. 의례적인 미사여구일지라도 존경이라는 수식어가 나에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아무튼 그 후배는 설날 인사와 함께 대학원 학위를 마치게 된 소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준 도움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적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구나’ 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 어느 날 후배로부터 받았던 연락이 말이다. 프레젠테이션 발표대회의 자료를 발전시켜 학술논문을 써보고 싶은데 도움을 요청한다는 말에 나는 다소나마 도움을 주었었다. 당시 나는 학위논문을 포함 여러 편의 학술 논문을 작성하고 다수의 심사에 대한 디펜스를 경험했기에 논문 작성에 대한 나름의 요령을 바탕으로 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비교적 구체적인 서론의 전개, 전반적인 목차, 논지의 전개 방향과 리퍼런스, 그리고 심사 후 결과에 대한 대응까지. 다행히 그는 ‘수정 후 재심’, ‘수정 후 게재’를 거쳐 KCI 등재 학술지에 게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큰 도움이었었나...


  얼마 전까지 ‘한 놈만 걸려라’라는 생각으로 미지의 원수에게 복수의 칼을 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다지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것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었고, ‘존경’이라는 단어로 감사 인사의 대상이 되었던 나는 정작 누군가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만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첫 수업시간 담임선생님은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을 칠판에 적으셨다. 내 이익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서로 돕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그려주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배워서 남 주자”는 그 해의 우리 반 급훈이 되었고, 오랜 시간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던 그 말은 후배의 새해 인사를 통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한 놈만 걸려라”를 되뇔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놈’이 누구냐는 좀 달라졌다. 나에게 상처 주고, 해를 입혔던 그 ‘한 놈’은 이제 잊고자 한다. 대신 내가 도울 수 있는 그 ‘한 놈’,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한 놈’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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