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8.
프랑스의 세계적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가인 장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는 환상, 가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말하였다. 현실의 사물과 사건보다는 첨단 기술의 발달에 따라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의 현실을 초현실(hyper reality)'이라고 하며 보드리야르는 전쟁의 양상도 초현실적인 것이 되었다고 평하였다.
걸프전에서는 종래의 재래식 전쟁이 아닌, 공군력에 의한 압도적인 폭격과 첨단 미사일에 달린 카메라가 목표물 타격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새로운 전쟁양상이 나타났고, 이에 비해 지상군은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TV를 통해 안방에서 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던 2차 세계 대전이나 베트남전의 교전이 아닌, 미사일과 폭탄이 날아가고 목표물을 맞추는 비디오게임과 같은 이미지였다. 뼈와 살이 터지고, 피가 낭자하는 재래식의 전쟁양상은 극해 제한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벌써 30여년이 지났지만 걸프전에서 우리는 미래전의 양상을 목도하였다. 주요한 전투행위는 보병의 전투기량이 아닌, CCC에서의 지휘·통제와 미사일 및 공군력으로 대변되는 첨단무기 버튼의 누름이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총싸움보다 비디오게임을 잘 하는 군인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와 함께 군사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첨단의 기술력임이 확증되었다.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하라'는 논리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죽창과 낫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학살 수준으로 제압당했고, 16세기 최신의 화승총으로 무장한 코사크족이 러시아를 통일한 주역이 된 사례 등 전사(戰史)는 무기체계의 우세가 결코 정신력으로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첨단의 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 시대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전투적인가?"
이는 '무엇이 더 목표에 기여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제기한 다소 삐딱한 질문이다. 야전보병부대의 소총수가 더 전투적인가? 아니면, 첨단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연구원이 더 전투적인가? 최신의 워리어 플랫폼으로 무장하고 최상의 전투기술과 체력을 겸비한 특수부대원이 더 전투적인가? 아니면 전략사령부의 벙커 안에서 전투기 혹은 미사일 공격을 통제하는 근무복 담당자가 더 전투적인가?
단지 군복을 입고 야전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전투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까? 장병의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첨단 장비의 개발을 '비 전투적’ 행위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핵심 목표물을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의 발사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하나의 터치행위는 야전보병의 전투행위에 비해 '비 전투적'이라 말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전투력 복원과 사기앙양을 통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행위를 '비 전투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액션영화에서, 그리고 예비역 특수부대원들의 참호격투나 유격훈련과 같은 TV 콘텐츠에 열광하는 대중은 여전히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비는 군인의 모습을 '전투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걸프전 이래 첨단무기체계가 보여준 전쟁의 이미지는 머지않아 미래전을 설명하는 헤게모니가 될 것이다. 물론 첨단의 시대에도 최종역할은 인간이 담당한다. 정책의 결정과 가치 판단, 이성과 윤리가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과거에 인간이 했던 많은 군사적 행위는 첨단 기술을 통해 자동화되어 가고 있다. 많은 경계초소의 경계병 자리를 카메라 렌즈와 센서가 대체하고 있다. 전차 속 탄약수의 임무는 포탄 자동 장전장치가 대신하고 있다. 조그마한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이어폰만으로 전세계가 연결되는 시대에 무전병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무기체계의 비약적 발전, 그리고 전쟁수행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이 시기에 ‘무엇이 전투적인가?’, ‘무엇이 전투적 행위인가?', 나아가 '전투요원, 그리고 전투병과를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