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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아빠 Oct 24. 2023

청출어람의 독서법

slow reading, 그리고 slow listening

                                                                                                                              2022. 2. 9.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머물러 있는 자는 선생에게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다.'

    -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책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속도와 관련된 독서법을 들자면 '속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속독에 관련된 수많은 책과 시내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속독 학원은 물론이요, 진기명기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발군의 속독 능력을 가진 아이가 두꺼운 책을 삽시간에 읽는 모습은 우리를 속독의 세계로 유혹하곤 한다. 속독의 목적은 무엇보다 시간의 절약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거두절미', '단도직입적', '서론은 생략하고 본론부터'와 같은 독서 태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독서는 책 속 세부적 내용의 이해 및 깊이 있는 통찰의 간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그렇게 빨리 읽어서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져 우리로 하여금 속독을 주저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은 속독이 깊은 사색과 묵상을 요구하는 시, 철학서와 같은 책보다는 자기 개발서나 가벼운 소설 등에 어울린다고들 말한다. 


  그런가 하면 '정독'은 독서의 가장 모범적인 자세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정독은 한 자 한 자를 또박또박 곱씹어가며 읽음으로써 책의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독서법이다. 정독은 속독의 신화에 매몰되어 책의 내용이라는 본질보다 '다 읽었다'라는 결과에 집착하는 목표지향적 독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가진다. 물론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겠지만, 그보다는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 역시 유념하면서 말이다). 여하튼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강박을 버려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빨리빨리'라는 시간의 강박 가운데 과속의 삶을 살아간다. 초고속 경제성장은 물론이요, 5G의 인터넷·택배·배달 등 각종 서비스와 행정기관의 업무 처리 외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 모두의 삶과 업무 또한 버거울 만큼의 속도를 강요받고 있어 상당수의 국민이 '번 아웃(burn Out)'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반작용의 모습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조기퇴직, 조기 은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미니멀 라이프, 수십 년 전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던 프리터족, YOLO 족, 중장년층의 폭발적 사랑을 받는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등과 같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슬로 라이프(slow life)'와 연관된 현상들이 주위에서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속도에 지쳐있기도 하다. 가장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실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빨리빨리'의 폐해를 교훈 삼아 우리는 독서에 있어서도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이른바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다. 『일식』으로 일본의 국민작가 반열에 오른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에서 주체적인 독서를 위해 느린 독서를 주장한다. 빠르게 읽어서는 깊이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의도에 독자들은 획일적으로 순응하고 말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로 다가가지 않는다. 독자마다의 삶과 경험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 또한 인간이기에 책의 내용이 완벽한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대신 독자는 많은 사색과 질문, 고민을 통해 그 책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단지 그 책의 내용에 순응하는 데서 나아가 책을 뛰어넘는 통찰과 지혜를 얻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독서와 독서 사이의 '시간적 틈'이다. 그리고 그 시간적 틈이라는 일상을 책과 연관 짓고 적용하는 고민과 사색 또한 요구된다. 살다 보면 문득문득 책의 내용이 떠오를 때가 있다. 생활 속 마주친 우연한 사건이 읽고 있는 책의 내용과 연관된 궁금증을 풀어 주거나 통찰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이 가장 대표적인 책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읽지만 많이, 자주 읽지는 않는다. 일요일에 교회나 성당에서 몇 구절 읽거나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구절이 생활 속에 기가 막히게 적용되어 통찰을 얻는 경험은 또한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경험한 바이다. 그리고 같은 크리스천들이 함께 그 구절과 경험을 나누면 감동은 배가 된다. 결국, 짧은 읽음 사이의 시간적 여유는 책을 곱씹게 하는 사색과 그 내용을 일상에 적용하는 통찰을 가능케 함으로써 독서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그러한 점에서 슬로 리딩은 단지 글을 느리게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슬로 리딩이란 짧은 읽음 사이사이에 긴 시간적 틈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시간적 틈을 사색과 일상 속의 적용으로 채우는 것이다.


  잠자리 낭독은 슬로 리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경험상 하루에 5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300페이지 책이라도 아무리 빨라야 두 달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마음 한 켠에는 아이에게 '빨리', '많이' 읽어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러나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 그 세계관에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기억해 보라, 등장인물의 이름은 물론이요, 시대적 배경과 국가별 문화의 차이 등으로 인해 종종 앞 페이지를 다시 찾아보는 경험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까지의 잠자리 낭독 간에는 이와 같은 세계관 적응의 부담은 전혀 없었다. 매일매일의 분량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어젯밤과 오늘 밤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보니 슬로 리스닝을 하는 아이는 책 속의 세상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간혹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헷갈릴지라도 읽는 아빠와 듣는 아이는 그 문제를 서로가 명쾌하고도 즉시 해결하곤 했다. 책을 읽던 내가 등장인물 OOO이 누구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면 아이는 곧 "아빠, 그 사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던 사람이잖아요. △△△의 직장 상관" 이런 식으로 구체화시켜 주었다. 가끔은 작은 아이가 "형아, 그 사람 □□□의 부인이잖아"라며 구체화의 정도를 더 높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의 내용은 듣는 아이들이 더 또렷이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내가 눈으로 글을 읽고 목으로 소리 내어 낭독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면, 아이들은 듣는 귀와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리는 상상에 집중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책의 내용을 오랜 기간 동안 들어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혼자서 책을 읽는다면 통상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와 세계관은 30분에서 1시간가량의 시간 안에 이해를 끝내야 한다. 잠자리 낭독은 이 기간을 1주일, 혹은 그 이상으로 확대시킨다. 우리의 뇌는 기억을 망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억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재배열시킨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잠자는 시간에 말이다. 물론 나는 뇌과학에 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라 할 수 있지만, 잠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 알고 있다. 매일 밤 아이들은 책의 내용을 귀로 듣고, 마음속으로 그렸으며, 곧 이은 잠을 통해 기억 속에서 체계적으로 구조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무의식적인 사색이나 묵상과도 같다고나 할까? 한 권의 책을 두세 달에 걸쳐서 느리게 말이다. 짧은 시간에 굽거나 튀기는 음식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숙성 발효시킨 음식은 성분 자체가 인간에게 유익하게 변화하듯 잠자리 낭독은 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온전한 나의 것으로 숙성시키는 최고의 독서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속도경쟁 속에서 급하게 쌓아 올라가던 아파트의 붕괴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의 안타까운 희생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속도가 최고의 가치가 된다는 사실은 내실의 소홀, 기초의 허수로 직결될 수밖에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독서는 양보다 질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책의 저자가 제시한, 잘 닦아 놓은 길만 재빨리 따라가는 것, 그저 저자의 글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순종하는 제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시간적인 여유와 상호 간의 소통 속에서 충분한 이해와 체계적 구조화를 통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철학을 넘어설 것인가? 잠자리 낭독이 단 하나의 정답은 아닐지라도 여러 정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통상적 독서에 비해 훨씬 긴 시간, 그로 인해 독서와 독서 사이 사색과 자문자답이 가능한 여유, 일상 속 적용을 통한 통찰, 그리고 읽는 자와 듣는 자 간의 소통이 숙성되어 저자의 의도와 책의 내용을 넘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 낭독은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함을 넘어 그 이상을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슬로 리딩' 이자, '슬로 리스닝'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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