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땅별 Apr 22. 2024

인생은 변인통제다

인생은 변인통제다. 인생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 잘 알고 구분하는 자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통제해야 할까?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세상에는 고통이 가득하다. 인생에서 고통은 상수다. 다만 우리는 이성을 지녔기에, 이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오판했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서 번번이 실패한다. '왜 내 삶은 이런 거지?' '왜 나의 인간관계는 형편없는 거지?'라고 의문하며 우리가 꿈꾸던 이상향과 잔혹한 현실 사이에 부조리를 발견한다.


그러나 외부 사건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도 내가 변화시킬 수 없다. 나의 가정환경도 마찬가지다. 내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피어나는 분노·질투 등 악감정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에 상처받는다.


예컨대 우리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이 경우 나쁜 감정을 느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죄악시하고 자책하곤 한다.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지만 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바꿀 수 있다고 오만에 빠지면, 역으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게 된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이 나를 휘두르고 괴롭혀도 우리는 무력하게 당하고 만다. 이 경우 타인이 나쁜 게 아니라, 타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내가 문제다.


상황도, 인간관계도, 가정환경도, 심지어 성격조차도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면, 무엇이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유일한 변수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관점을 바꾸는 것.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변수가 된다. 수동적인 태도로 외부 상황에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이들은 상황을 변수로 바라보았고, 통제되지 않는 외부 상황에 괴로워했다.


올곳은 이들. 지혜로운 자는 상황을 변수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잔혹한 상황을 상수로 바라본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고통은 세상의 이치라고 믿는다. 다만 숨지 않는다. 당당히 맞설 뿐이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당당한 태도로 세상을 직면한다. 과거 자신의 수동적인 태도를 앞으로 능동적인 태도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본인의 관점을 변수로 바라보며, 변수 값을 양수(Positive Number)로 만든다.


'삶은 나아질 것이다'라는 가설을 설정하며, 그 실험 가설을 성공하기 위해 적절한 변인을 통제하자.

작가의 이전글 직업적 실존과 인간적 실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