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남아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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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가면을 쓴다. 그 가면은 때로는 쉽게 벗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영겁이 지나도 벗겨지지 않는다. 이 가면은 직업적 실존이다. 여기서 말하는 직업이라 함은 단순히 '직장 노동'이 아니다. 때로는 가정 내에서 나타나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의 역할이 그 예고, '종교'에서 나타나는 성직자의 역할이 그 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가면이 벗겨진 자신을 마주하곤 한다.
가면이 벗겨진 나는 본질적으로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텅 빈 마음, 알몸으로 투영되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우리는 무섭고 두려워서, 다시 가면을 쓰고는 한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순된 자아, 모순된 실존을 직면하고 품어안는다. 이러한 인간적 실존을, 나의 초라함과 너저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감 있는 사람이고,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인 것이다.
직업적 실존과 인간적 실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을까? 필자는 수백번, 수천번을 판단해 봐도 인간적 실존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는 판단력은 있으나 결단력이 없었다.
직업적 실존과 인간적 실존 사이에서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고, 망설임의 끝은 후회였다. 두 양가감정 사이에서 감정적 파고는 높았으며,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과 번뇌는 빈번했다.
그렇게 솔직하지 못했고, 혼자서만 고민을 떠안았다. 털어놓을 상대 없이 괴로워했고 늙어왔다. 다만 그 과정이 인간적인 걸 알기에 차마 스스로를 훈계할 순 없겠다. 오히려 내게 필요한 것은 남아있는 자기 앞의 생을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릇아닐까. 나를 이해하는 것이 타인과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터다.
확실히 말하고 싶은 건 솔직하게 살자는 거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간에 가면을 벗고 본질적인 나를 마주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살자. ‘후회 없이 살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