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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Jun 23. 2024

무명이, 이쁜이, 그리고 천명이

어느 시골 마당개 이야기

  5월 4일, 토요일 오후,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어린이날 행사로 오전에 많은 차들이 오고 간 후, 집에 갔다가 오후에 잠시 연수원에 들렀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차 한 대가 동물병원 앞에 주차되어 있고, 아주머니 한 분이 열린 차 뒷문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계셨다.  주차를 하고 다가가 인사를 하면서 보니, 머리쪽 피부에 상처가 있는 개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었다.  '차에 치인 건가? 그럼 응급인데...'라고 생각하는 사이, 전 여사가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전 씨 성의 여자 수의사)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며 '외상인데 구더기가 너무 많아서 일단 마취하고 여기서 세척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대략적인 세척을 마치고 처치실로 옮겨 상처를 확인하였다.  진물이 흘러 떡져있는 털이 냄새를 풍기는 가운데 머리 정수리 부분에 직경 7 cm 정도의 원형의 피부결손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두개골의 일부가 보였으며, 주위 근육이 소실되어 있었다.  보호자분 말씀에 의하면, 새끼를 낳은 옆집 개에게 물렸는데 며칠 사이에 상처가 악화되었단다.  치료를 해주려고 해도 손도 못 대게 하여 망설이다가 근처의 모든 동물병원에 전화하였고, 주말에는 진료를 안 한다거나 지금은 진료가 어렵다는 얘기는 들었고, 마지막으로 우리 병원 전 여사에게 연락이 되어 케이지에 넣어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상처부위를 세척하고 소독하고, 피부결손이 너무 커서 소독약으로 적신 거즈를 상처부위 위에 덧대어 피부에 봉합하였다.  왼쪽 눈의 각막에 손상이 있었지만 천공되지는 않았고, 각막 치유를 위하여 안검을 일시적으로 붙여주는 플랩을 해주었다.  입꼬리 옆의 볼 쪽에도 손상이 있어서 봉합하고 감염된 상처이기에 일부 액체가 흘러나올 수 있도록 여유를 두었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치하고 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을 보면서 보호자님과 진료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름이 없어요.  그냥, 이쁜이라고 하시죠.'


  '이 정도의 상처라면 대부분의 보호자분들은 안락사를 말씀하실 텐데, 이렇게 데려와 주셨으니 일단  치료를 시작해 보시죠.  밥은 잘 먹나요?'   '네, 잘 먹어요.  상처가 생긴 이후에도 먹는 것은 잘 먹어요.'  


  '네, 상처가 너무 크지만, 일단 잘 먹으면 상처치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 맛있는 것을 잘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파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주시면 좋겠는데 장소가 가능할까요?'   '네, 그럼 저희 집 정자에 모기장을 치고 거기에 두면 될 거 같아요.'   '네, 그렇게 해주시면 파리가 구더기를 낳는 것은 막을 수 있으니, 상처가 악화되지 않고 손상된 부분으로 피부가 자라면서 상처가 나을 수 있을 듯합니다.'  '네, 주말에 이렇게 치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요모.  이틀 뒤에 다시 오셔서 상처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소독하도록 하시죠.'


  그렇게 이름도 없던 마당개는 이쁜이가 되었고, 이틀 뒤에 다시 방문했다.  우리를 보고 도망가려고는 했으나 물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쁜이를 보정하고 마취제를 투여한 후 상처부위를 확인해 보니, 추가적인 감염이 없이 아물고 있었다.  입의 상처도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잘 먹어서인지 배가 볼록하게 불러 있었고 전신적인 후유증도 없어 보였다.  


  '이틀 사이에 많이 좋아졌네요.  밥은 잘 먹나요?'  '네, 주는 것은 다 잘 먹어요.  파리 오지 말라고 파리약도 뿌리고 모기장 안에 넣어 두었더니 괜찮아지는 거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서서히 더워지는 날에 파리가 많이 늘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보살펴주셔서 잘 낫고 있는 듯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이쁜이가 이렇게 나아져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이 이쁜이가 살아날 운명이라고 이름을 천명이라고 하라네요. 하하하'  '그럼 앞으로 약을 지어드릴 테니 약을 먹여주시고 이번 금요일에 다시 오실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외부 진료로 자리를 비울 때는 우리의 전 여사가 도맡아 이쁜이의 진료를 해주었다.  보호자분은 4-5일 간격으로 매번 차로 40분이 걸리는 먼 길을 직접 운전해서 와주셨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쁜이의 상처는 눈에 띄게 나아졌다.  2주 후 내가 다시 이쁜이를 보았을 때는 머리부위의 손상 부분은 거의 다 나아서 딱지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눈의 각막은 손상된 부분이 두꺼워져 있었다.  입의 손상도 상처는 다 나았으나, 볼에 생긴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고 영원한 결손부로 남을 듯했다.  


  '기적이네요!  그렇게 컸던 상처가 이렇게' 낫다니.  선생님의 정성과 이쁜이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네요.  정말 생명이라는 것은 대단하네요.'  '아이고, 수의사 선생님이 주말에도 매번 치료를 해주셨으니 이렇게 나았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로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이 비친 감동의 눈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쁜이도 이제는 보호자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가가서 먹을 것을 주려고 하면 꼬리도 치고,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셨다.  겁먹었던 눈이 이제는 애교스러운 눈길로 변했다.  이마에 있는 딱지는 피부가 형성되면서 나을 것이고, 각막도 흰 손상부가 조금 맑아지면 볼 수 있을 듯하다.  볼에 난 구멍으로 밥을 먹을 때 조금씩 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현재의 삶은 이쁜이에게는 행복한 날들일 것이다.


  수의사로 살면서 이렇게 말도 못 하는 마당개의 상처가 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았고, 이런 상태에서도 마음이 합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이쁜이의 사진을 보면서 여러 가지 울컥해진다.  


  '이쁜아,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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