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순 Mar 16. 2022

네? 저 우울증 아닌데요.

성인 ADHD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우울증 진단받은 썰 

 가비님이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심리 상담소에 출현했다. 성인 ADHD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명의 장난인가. 가비 님의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나타날 때쯤, 나는 나의 집중력과 산만함에 심각성을 느낄 때였다. 가장 크게 느낀 건 업무를 하면서였다. 무언가 깊게 고민해보고 창조해야 하는 업무가 많은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워 왔다 갔다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제일 심각하게 느낀 건, PC 카카오톡을 1분도 아닌, 30초마다 들락날락거린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PC카카오톡을 삭제해버렸는데, 2분도 안돼서 다시 다운로드하고 있는 나를 보고 경악했다. 그 밖에도,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인터넷 쇼핑을 한다던가, 업무가 여러 개면 거의 5분마다 번갈아가면서 하는 등 나의 증상은 다양했다.


 ADHD는 어렸을 때 발현된 것이 성인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생활기록부를 요구한다고 한다.(특히, 초등학생 때) 하지만, 나는 나름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 예쁨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학업을 뛰어나게 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산만하거나 집중을 못해 선생님들께 핀잔을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 한 번도 나는 나 자신을 ADHD일 거라고 고민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의심이 싹튼 나는 각종 성인 ADHD 증상을 보며 혼돈에 휩싸였다. 내가 의지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진짜 ADHD일까.


 모두들 가비 님의 영상에 공감했던 걸까. 블로그를 비롯한 각 종 SNS 에는 성인 ADHD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모두 나처럼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이 와중에도 '내가 회피하고 싶은 걸까?' 싶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산만함이 의지로만 해결되지 않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면 했다. 의지박약, 정신력 부족이 아닌, 약 처방이 꼭 필요한 '환자'이고 싶었다. 내 그렇게 충동적으로 정신과 병원을 예약했다. 


 정신과의 인기는 대단했다. 예약이 차서 3주 후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어느덧 3주가 지나고, 정신과 가는 일이 다가왔다. 3주가 지난 시점에서는 솔직히 성인 ADHD도 아닌 것 같고 가기도 귀찮았다. 일하기 싫어서 집중력이 그런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3주 기다린 게 아까워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당황스러웠다. 초진이라 아주 간단한 설문지를 주셨는데, 설문지를 하면서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환자분은 요새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요즘 환자분이 느끼는 감정은 언제부터 지속되었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아주 조그맣게 적었다.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심리보다도, 이 마음이 언제부터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고,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렇게 아주 간단한 설문을 끝내고,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찾아오게 된 계기는 '성인 ADHD'라고 말하며, 나의 증상을 얘기했다. 정신과 상담은 처음이라 횡설수설 얘기하는데도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들어주셨다. 하지만, 점차 선생님의 질문은 디테일해지기 시작했다. 자칫 말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머뭇 거리며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애써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결국엔 선생님은 다른 질문으로 그 대답을 이끌어내시기도 했다.


. "저도 제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조금 더 검사를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설문지를 하면서도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이 핑 돌았다.


 검사를 끝낸 후, 진정된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이 차분히 말씀하셨다.


"병원에 오시길 잘하셨어요. 성인 ADHD의 증상이 보이지만, 충동성이 아직 뚜렷하진 않아서 우울증에서 비롯된 건지 좀 더 시간을 두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울증 치료가 우선이에요."


나는 반문했다.


네? 저 우울증 아닌데요.


 선생님은 안 그래도 우울증 환자들이 하도 자신의 수치를 믿지 않는다며, 정상인 수치를 꼭 보여준다고 하셨다. 정상인과 확연히 차이나는 그래프는 내가 우울증임을 증명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께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 저는 여기 오기 전까지도, 제가 의지가 없고 절실하지 않아서 회피하고 싶어서 병원에 오는 걸까 싶었어요. 그리고 혹시 결과가 ADHD라고 나오더라도 그걸 이용해서 더 회피할까 걱정스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울증이라니요. 솔직히 요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요. 다들 죽고 싶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나요? 그냥 저는 회피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저 우울하지 않아요. 저 괜찮아요"


선생님이 아주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우울해 보이는걸요.
ㅇㅇ씨의 말에는 모두 자기 비하가 섞여있어요.

 "'절실하지 않다', '의지가 나약하다.' 모두 ㅇㅇ씨의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그리고 회피도 우울증에서 비롯되어 나타나요."


 '자기 비하가 섞여있다.'라는 말을 듣고서는 멈칫했다. 그렇구나. 자기 비하였구나. 그렇다고 나의 생각을 한 번에 바꾸긴 어려웠다. 그냥 이것도 내가 나약하니까 그런 거지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아까부터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가 우울증 때문이었을까 싶었다. 이 따끔씩 찾아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던 게 우울증 때문일까 싶었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말씀해주셨다. 


 "ㅇㅇ씨, 2030대는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잖아요. 진로도 찾아야 하고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시기니까요. ㅇㅇ씨의 중,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제가 봐도 그래요. 그 당시에 만약, 치료를 받았으면 아마 조금 더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도 마찬 가지예요. 치료받으면서 성취감도 맛보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을 잡으면 좋겠어요. 나아질 거예요."


 그렇게 나는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선생님의 위로 때문인지, 내가 우울증이었음을 인지해서인지, 우울증이나 걸리는 나 자신이 미워서인지, 10대 시절이 생각나 서러워서인지. 그렇게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은 당장의 효과는 없다고 하셨다. 2주 정도는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울증도 감기라니까, 별 거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사실 지금도 나는 내가 나약하고 예민한 거라고 생각한다. )


 무튼, 성인 ADHD를 걱정했던 나는 우울증 진료로 끝이 났다. 혹시나, 같은 고민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상담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만약, 정신과가 부담스럽다면 심리상담센터 등 다양하니 고민해봐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우울증 일지를 적어보려 한다.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