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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Apr 02. 2022

아빠 우울증 약도 먹어.

우울증이 면피용처럼 느껴질 때.

아빠의 보험비를 매달 20만 원~30만 원가량 꾸역꾸역 내주었다. 중간중간 아빠가 직접 돈을 보내올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략 100만 원가량의 내 돈은 그렇게 아빠에게로 흘러갔다.


마지막 보험을 드디어 해약하는 날. 남아있는 2건의 보험들을 모조리 해약했다. 그중 한 건은 자동차 보험이었는데, 갱신형이기도 하고 다시 가입해도 될 것 같아서 같이 해제했다. 그런데 웬 걸, 자동차보험조차 피보험자는 아빠로 되어있었다. 그나마, 자동차보험은 나도 꼭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기에 아빠 보험을 들어주면서도 제일 가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보험이 아니었다.


그래, 됐다.

이제 다 끝났다 싶어 긁어 부스럼 만들기도 싫었다. 아빠에게 통보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나 보험 정리했어. 이제는 더 이상 나한테 보험 들으라고 하지 마."

"아빠 50만 원만 빌려줘, 다음 달에 갚을게."


'알았다'는 말 대신 돌아온 건 50만 원을 빌려달라는 말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아빠와의 대화는 힘이 빠진다. 그래. 돈 천만 원, 이천만 원 빌려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딘가 싶다 하다가도, 수중에 50만 원이 없어서 다음 달에 갚는다는 아빠의 말은 그것대로 화가 치민다.


"갑자기? 왜?"

"아빠 세금이랑 이런 거 내야 해서 그래. 다음 달에 갚을게."

"알겠어. 근데 보험은 다시 안 들어줄 거야."

"그래도 아빠가 몇 번 돈 보냈잖아."


아빠는 그래도 일정 부분을 본인이 냈던 것에 당당한 듯 굴었다. 딸이라면 이 정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아빠가 부담스럽고 한심하고 버거웠다. 애초에 아빠가 아니었으면, 내 돈 100만 원가량이 나갈 일도 없었고, 보험을 해지하기 위해 번거롭게 전화를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결국 화가 나 물었다.


"아빠, 자동차 보험도 피보험자 아빠로 되어있더라."

"아 그래? 아닌데?"


아빠는 잠깐 확인해보겠다고 전화기를 내려놓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 그러네! 그럼 너희 다시 들면 되겠다. 아빠한테 신분증이랑 은행 계좌 카톡으로 보내"


아빠는 새로운 보험을 하나 계약시킬 수 있어 기쁜 모양이었다. 나의 마음은 어떤 지 안중에도 없다. 아빠는 우리에게 본인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지 모른다. 차갑게 나는 거절했다.


"싫어, 돈 없어."

"자동차 보험은 다시 들어야 하잖아. 그리고 이번에 몇 건 더 채워야 해."

"다른 일은 없어?"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보험일이라도 하는 건 알겠다. 그런데, 나한테 손 벌리는 일은 정말인지 치가 떨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물었고, 아빠는 갑자기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빠 팔 아파서 못 쓰고 밤에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자는 거 알잖아."

'그건 아빠가 늙어서 일하려니까 무리가 간 거고, 돈 아낀다고 병원 안 간다고 했다가 일 커진거고, 지금은 돈 없어서 치료 못 받으니까.'라고 반박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들었다.


아빠는 친구들과 있는지 수화기 넘어는 아저씨들의 웃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빠는 하소연을 하더니 주변 친구들이 들을 새랴 목소리를 살짝 줄이며 나에게 말했다.


"아빠 진짜 힘들어, 아빠 우울증 약도 먹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다간 크게 화를 낼 것 같아 얼른 마무리했다.


"알았으니까 50만 원이랑 아빠가 아까 말한 거 다 보낼게 나 이제 사무실 들어가 봐야 해."


지금이야 글을 쓰면서 진정된 상태라 그나마 아빠를 이해한다. 그래, 그나마 딸한테라도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정신병원까지 가서 약까지 처방받고 우울증을 인정하는 그 과정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면피용 같이 말하는 아빠의 우울증 약 복용 사실은 화만 돋울 뿐이었다. 항상 그런 식이 었다. 우리에게 잘못한 행동을 보여준 후, 힘들다며 자살하고 싶었다고 몇 번 얘기했다. 잘못에 대한 인정과 용서는커녕 본인이 얼마나 힘들지를,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세웠다.


우울증은 가족과 지인에게 알려 주변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 건 안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린다는 건 그만큼 도와달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팩트만 나열해 놓으면 아빠의 우울증을 위로해주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다.


하지만, 면피용으로 다가오는 우울증 복용 사실은 나에게 반감으로 다가온다.


내가 ADHD일까, 우울증일까 고민이 되면서도 그걸 빌미로 회피를 할까 싶어 정신과를 가기까지 한참을 망설였고 지금도 그러지 않으려 경계하고 있다. 우울증 약을 영양제 먹는 거라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약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 보조제일뿐이며, 내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내가 우울증인 걸 누가 알까 싶어 '정신과'라는 단어가 들어간 약봉투는 찢어버리고, 약봉지에 적혀있는 약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도록 재빨리 먹고 버린다. 그걸로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거나 나의 실수에 대한 정당화, 합리화를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민만 남은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또 바보같이 50만 원 보내주고, 보험을 들어주는 일이다. 이러니까 아빠가 나에게 급할 때마다 전화하지. 그래, 내 잘못이다.


나는 아빠에게 이골이 나있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글을 쓰며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음 갑자기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겠어.', '원래 이렇게 뜬금없이 본인 속 얘기 나올 때도 있으니까.' 하면서 말이다.


우울증 자체가 이중적이다. 현대인이라면 다 겪는 일이라 감기처럼 여겨지면서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점에선 무서운 병이니.


그래서 반응 역시 사람에 따라 나뉠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거나, 심각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나는 아빠에게 반감이 있는 상태로 들은 채라 별다른 반응을 해주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우울증이라고 힘들다고 말한다면 꼭 따뜻한 위로와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숨기고 숨기다가

정말 힘들어서 얘기할 가능성이 크기에.


결국엔 나처럼 반응하지 말라고 쓴 글이다. 사람은 미워해도 병은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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