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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Mar 29. 2019

'내가 알 바가 아닌', 알바 인생?

그냥 인격체로만 봐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이번 학기 되면서 바라던게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국가근로장학생'이다. 소득분위가 낮아도 시간표나 성적 등 다양한 것이 고려되는 '국가근로'는 꿈의 아르바이트다. 내가 이렇게까지 국가근로에 목을 매는 건, 알바를 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조금이라도 대우받으면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별명은 알바몬(광고 아니다.) 한 때는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도 해보았다. 웨딩홀, 호텔, 물류, 텔레마케터, 사무직, 파리바게트, 학원, 과외, 편의점, 크리스피 도넛, 카페, 전단지 돌리기, 인형탈, 영화관 등 별의별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계속되는 아르바이트는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었지만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짬(?)이 차서 괜찮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일 때는 최저시급을 못 받을 때도 있었고 수습기간이라며 3일 동한 일한 임금을 아예 못 받은 적도 있었다. 또한 손님들은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무시하면서 사장님처럼 일처리하기를 원했다. 어쩌다 텃세가 심한 ‘선임 동료’까지 걸리면 일하는 동료들 눈치 까지 봐야했다.


 나의 첫 알바는 웨딩홀 엘리베이터 안내원이었다. 층수를 눌러주는 일은 쉬웠지만, 추운 겨울 날 살색 스타킹과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고역이었다. 여느 날처럼, 나는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엘리베이터 정원이 초과되었고 못 탄 고객님들께 다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아저씨가 ‘아가씨가 나가면 되겠네.’ 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몸무게가 몇이야?’, ‘이런 일 하려면 살 좀 더 빼야겠어.’ 라며 서슴지 않게 놀려댔다.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에 모멸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첫 알바는 잊지 못할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X 밟았다 생각하자.


 아르바이트를 하면 할수록, 서럽고 억울한 일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할 테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면역력’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들에 면역은커녕 울화통만 쌓였다. 기저귀를 카페 탁자에 놓고 간 손님, 담배를 권유하는 사장님, 나에게 잘못을 미루는 동료.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말도 못하고 꾹 참고 있는 ‘나’의 모습은 정말인이지 한심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남의 돈 벌기 정말 힘들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엄격하신 사장님, 까다로운 고객님 모든 이유의 근본은 '돈의 가치'이다. '월급을 받는다' 는 것은 생각보다 더 엄청난 책임감이 수반된다. 돈의 값어치, 쉬운 말로 '밥 값'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냉정하고도 당연한 원칙이다. 나는 이를 통해 아무리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존버(열심히 버틴다)'를 외치며, 주도적으로 달리려 애 썼다. 내 돈 귀한만큼, 남의 돈도 귀하고, 내가 하기 싫은 남도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밥 값'은 하고 남에게 '핑계'를 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혹여 정말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생길 때 당당하게 내 권리를 얘기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먹고 열심히 일해도 진상손님의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요구는 내 멘탈을 마구 흔들어 놓긴 하지만 말이다.(영화관 알바 할 때, 19금 영화 신분증 검사하다가 들어봤다 "이런 씨지비!")


 알바라는 아르바이트의 준말은 어쩌면 ‘내 알 바가 아니야.’ 라는 말에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알바생들의 기분과 마음이 어떻듯 자신들의 알 바가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분들 때문에 말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와 늘어나는 실업률에 생계형 아르바이트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누군가의 자식이, 누군가의 부모가, 심지어는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절박한 마음으로 돈을 벌려고 나왔을 아르바이트생들의 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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