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좋은 영양제를 맞을 시기가 되었다
11번째 기록
1.
전부터 나는 나의 감정을 분출하는 데 용했다더라.
필터 없이 쏟아지는 감정의 조각들은 상대의 발등을 찍거나,
빗물처럼 떨어져 불어나버리기도 했다.
조심하겠노라 했던 다짐들이 생각났다.
기쁨이 기쁨을 낳듯, 우울이 우울을 낳을 테니
그 거센 파도 속으로 상대를 끌고 오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
그런데도 나는
언젠가
말을 흘리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말의 줄기가 따르고 있었다.
2.
나도 모르게 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떤 감정을 전하려는 게 아니라 오늘의 일과를 설명하고 나면
괜찮아지는 기분이 좋아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상대의 기분을 살필 줄 몰랐다.
상대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괜찮은지 물을 마음의 여유가
나의 배려가
많이 부족했다.
상대가 먼저 말을 시작했어도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로 끝맺음되었다.
감정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말이 죽도록 싫었는데,
어쩌면 맞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지금까지 모든 것을 부정한다기보다,
조금 더 좋은 영양제를 맞을 시기가 되었다.
나의 감정을 전달할 때,
그 감정이 기쁜 감정일지라도 혹은,
정말 아무런 표정이 없는 일상일지라도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되는지,
지금 이 사람도 혹시 힘들진 않을지,
내 감정으로 상대가 짐을 짊어지지는 않을지.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삼키는 연습이 필요해졌다.
나를 정당화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그 감정을, 나 스스로 추스르고 어루만지는 연습 또한.
4.
사사로운 감정 모두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섬세함을 길러줄 수 있을지언정,
동요하는 감정의 일방통행은
누군가를 헤칠 수도 있었다.
,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