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키는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
정이삭, <미나리>
윤여정 배우가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 조연상 28관왕을 수상하며 화제에 오른 <미나리>는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인 영화상을 기록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논란과 아쉬움이 있지만, 이로써 작품의 우수성이 대중들에게 조금 더 알려지게 된 듯하다. 영화는 개봉 3일 만인 지금 관객수 1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미나리>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청초한 초록빛으로 물든 화면은 고요하게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카메라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준다. 우리는 햇살이 부서지는 여름의 풍경을 담백하게 누릴 수 있다. 풍경을 보듯 가족을 보고, 가족을 보듯 풍경을 본다.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게. 카메라는 보통의 시선에서 보통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이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에 깊이 공감한 관객들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우리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윤여정 배우의 연기 덕분일 텐데, 나는 오히려 그녀의 연기가 독특하고 신선했다. 희생이 녹아 있는 장르 영화 속 할머니의 전형적인 틀을 넘어서면서도 정과 사랑이 넘치는 순자는 흔들리는 가족 관계의 중심이 될 만큼 매력적인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정겹고, 그 정겨움에 기대 가족의 연대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한 <미나리>의 가족은 한국의 , 미국의, 이민자의 가족을 그리지 않는다. '우리'의 가족을 기록할 뿐이다. 한국과 미국, 이민자라는 굴레를 넘어 관객에게 전해지는 가족의 모습은 국적이나 장소 따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미나리>는 어떤 경계를 허물어낸다. 그러면서도 옅게 녹아든 차별의 흔적들은 어떤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자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신중함으로 나타났다. 영어와 한글을 오가는 대사 역시 정이삭 감독이 밝힌 바대로, '마음의 언어'로써 어떤 장벽을 걷어내려는 방식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족 간의 끈끈해지는 정(情)을 담담하게 담은 재현은 거주할 공간을 놓고 캘리포니아와 아칸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니카와 제이콥에게 날아드는 종이비행기, 멸치와 고춧가루 등을 챙겨 와 모니카에게 건네는 순자, 제이콥의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믿어주는 모니카, 순자의 아픔을 모니카에게 전하는 앤, 화재가 난 창고로 달려가 작물을 같이 옮겨주는 모니카, 또 모니카를 먼저 챙기는 제이콥, 마지막으로 순자를 향해 달려가는 데이빗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화면의 우측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빠져나가는 데이빗의 돌파는 가족 간의 끈질기고 강인한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영화가 이 돌파를 위해 끈질기게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포기하지 않으려는, 손을 놓지 않으려는 삶과 극복의 의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들은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된다. 굳건하고 강인하게, 끈질기게 엮이며 미국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 거실에서 부둥켜안고 곤히 잠든 그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기에 미나리 밭으로 나가 미나리를 캐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영화의 앤딩은 끈끈해진 채로 더욱더 굳세질 그들의 모습을 기대토록 한다. 또한, 새로운 각도에서, 풀 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그들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는 듯하다. 은연중에 깔린 차별의 시선과 목소리를 죽이고 좀 더 가까이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와 다를 바 없다고. 모두 비슷한 모습이라고.
모든 걸 걷어내고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맑고 따뜻한 감정이, 서로를 향한 짙은 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다시 관객에게로 엮이는 미나리의 힘. 그 따뜻한 온정이 갖는 동질감과 공감. 말 그대로 원더풀 미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