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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보라 Oct 19. 2023

왜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귀찮을까?

귀찮은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말 귀찮았을까?

엄마는 내가 정말 귀찮았을까?

2015년 1월 2일 질문 중에서 건져 올린 하나의 감정은 ‘귀찮다’였다.


‘귀찮다’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


나는 엄마를 괴롭거나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엄마는 정말 괴롭고 성가셨을까?

나는 정말로 우리 아이가 귀찮은 걸까?

왜 귀찮다는 마음이 자꾸만 올라오는 걸까?

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와 함께 귀찮게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났던 걸까?


어느 날,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고 귀찮아. 밥 하는 게 제일 귀찮아. 삼시세끼 안 먹으면 안 되나? 나만 있으면 안 할 텐데... “

이 말의 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를 귀찮게 하는 존재구나! 밥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구나!‘

그리고 또 하나의 느낌이 느껴졌다. ’ 밥 하는 일은 하찮은 일이구나! 아무나 하는 일이구나!‘

밥을 할 때마다 무엇인지도 모를 느낌들이 느껴졌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식되지도 않았지만 과거의 느낌은 내 몸에 온전히 살아서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던진 질문에서 ‘귀찮음’이라는 단어를 보고 밑줄을 그었다.

출처 예스24

<손으로 말해요>

그때의 나는 아기라서

어려서

엄마의 표면적인 말을 온전히 믿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와 아빠가 손으로 보여준 사랑을 볼 수 없었다.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손으로 행한 사랑을 보지 못했다.

손으로 모든 걸 하지요.

사랑해, 말하면서요.

내가 엄마한테 원했던 것은 함께 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엄마처럼은 안 키워!!

내 아이에게 내가 원했던 사랑을 손으로 행했다는 것을 이제야 본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나는 아이들과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나 혼자 해버리면 금방 할 일들을 하나, 하나, 아이들과 함께 했다.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이었다.

손으로 말하는 사랑을 찾아보았다.


정말 귀찮았던 걸까?

귀찮음만 있었던 걸까?

귀찮음을 이겨낸 행동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던 걸까?


결국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컸다는 것을 알아보기까지 그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내가 내 아이와 이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가 귀찮지만 해 주셨던 밥과 간식들 때문이었다. 도시락을 5개를 싸셨던 엄마의 사랑을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사랑이 우리 아이에게 연결되어 사랑으로 자란다.


시간들이 쌓여서 이제는 아이들이 쿠키를 스스로 굽는다. 귀찮아하지 않고, 재미있게, 알아서 굽는다.

나는 정말 귀찮았던 것일까?

소풍날이면 김밥을 싸던 엄마가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고 가장 즐겁게 먹는 음식은 김밥이다. 소풍날, 가족끼리 외출하는 날, 엄마는 혼자 김밥을 싸셨다. 누구든 깨워서 같이 하자고 하시지....

우리는 김밥을 함께 싼다. 신랑도, 딸들도 함께 싸서 먹는다. 엄마는 김밥을 싸면서 정말 귀찮았던 걸까? 나는 정말 귀찮았나?

김밥을 싸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가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들을 느낄 수 있었을까?

김밥을 만들어 먹을 일이 있었을까?

쿠키를 맛볼 일이 있을까?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어낸 사랑을 볼 수 있었을까?

엄마의 사랑을 사랑으로 볼 수 있었을까?

아빠의 손으로 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귀찮음 속에 있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왜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이 귀찮을까?

질문 속에서 다른 질문들을 해보면서 귀찮음 속에 담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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