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면서도 무섭다
여자 친구가 쉬는 날에는 종종 동네에 마련된 강아지 놀이터에 들러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거기에선 온갖 개들을 볼 수 있는데, 수 없이 지나치는 개의 행동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풀 바닥에 등을 비비는 것이다. 젖은 땅, 마른땅 따질 것 없이 등을 비비는데, 견주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목욕 일정이 추가되는 순간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꿈틀대는 것이 마냥 귀여울 뿐이다. 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지만, 동물적인 공감으로 분명 신나고 행복한 마음일 것임이 단 번에 느껴진다. 15년 동안 모텔방에만 갇혀 있었던 오대수 씨가 아니라면, 어떤 인간이 풀냄새에 감동하여, 흙바닥에 등을 비빌 수 있을까.
그러기에 인간의 감각은 너무 무뎌서 풀냄새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어쩌다 찾아낸 즐거움에도 쉽게 익숙해져 버린다. 풀냄새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여자 친구가 퇴근할 때 여자 친구의 개는 매일 같이 폴짝폴짝 뛰며 반기지만, 난 그러지 못한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반기는 것도 사람보다 개가 더 잘하는 종목이다.
20대 초반 우리 집 강아지 '토비'의 죽음 앞에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뿐만 아니라 정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여자 친구의 개 '유키'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몰티즈 종특인지 성깔이 대단해서 밥 줄 때 빼고는 날 따르지도 않지만 말이다. 유키의 기분이 특히 안 좋은 날에는 조심해야 한다. 종종 물기도 하지만, 사람보다 쿨해서 화해도 빠르다.
알고 보면 잘하는 게 많았던 유키는 곧 12살이 되고 심장병을 앓고 있다. 나이 든 소형견과 심장병의 조합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매달 병원을 다녀도 나날이 잦아지는 유키의 숨 가쁜 기침을 보고 있자면 토비의 마지막 순간이 오버랩되어 정말 간 떨린다. 개와 함께하는 것은 역시나 무섭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개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남은 사람들은 함께한 시간보다 오랜 시간 큰 상실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