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엄청난 방해에도 거미인간 이야기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무려 6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 코로나 이전에 개봉한 전작이 561만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기다. 나도 스포 당하는 게 무서워서, 부스터샷의 통증을 달고서 이틀 전에 급히 보고 왔는데, 이 정도의 흥행도 충분히 이해되는 영화였다.
다만, 스파이더맨 만화에 흥미가 없고, 지난 이야기를 모른다면, 도대체 무슨 유치한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괴작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나도 2008년 이전, 스파이더맨보다 생소했던 아이언맨이나 토르 같은 캐릭터들을 몰랐던 터라 영화화 소식을 듣고선 '이름부터 유치한 60년대 만화 캐릭터들이 지금도 먹힐까?' 싶은 회의적인 생각이 앞섰다. 그 당시에는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도 비실비실하던 때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성공보다는 실패를 점쳤다. 이름부터 유치했던 아이언맨이나 트로이와 헷갈렸던 토르의 개봉에도 전혀 관심 없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 제작사가 되었다... (주식 계좌에 파란색만 보이는 이유가..)
마블 스튜디오의 엄청난 성공을 보면서 이야기의 힘이 거대하다고 느낀다. 마블 스튜디오가 아크 원자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토니 스타크나 피터 파커가 실존 인물도 아니며, 그냥 그들의 이야기와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이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르는 이가 더 적으니 차라리 실존하는 편에 가까워졌다.
아직도 진행 중인 OTT 전쟁터에서도 이야기의 거대한 힘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아마존 등등.. 전 세계 시가총액 32위 내의 초거대 기업 4곳이 한 시장에 뛰어들어서 치열한 콘텐츠 플랫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 역할만 해오던 애플과 아마존은 이제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도전하고 있다. 휴대폰 판매업체(애플), 클라우드 서비스 및 쇼핑몰 업체(아마존)조차도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는 특성을 알아채고, 콘텐츠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찾고 있다.
원하는 콘텐츠를 한곳에서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출처:대신증권)
굶을 걱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는 의식주 같은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다. 다만, 밥은 하루 세끼, 집은 다주택 세금, 옷도 보관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이야기는 시간만 있으면 계속 소비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유통이 쉬워도 너무 쉬워져서, 배송, 유통기한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매력을 느끼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소비하기에도 참 바쁘다. '왕좌의 게임'을 알게 되어 한참 몰아보던 그때, 이 멋진 드라마의 시즌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대사를 곱씹던 기억이 선연하다. 심지어 '이 이야기의 창작자와 같은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야...' 수준의 감탄에 가까운 감사를 느끼는 때도 있었다. 지금도 여유가 생기는 틈틈이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극장에 걸려있는 매트릭스와 킹스맨도 오래도록 기다렸던 터라 종영되기 전에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갈증만큼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개인도 쥘 수 있는 부의 열쇠가 있다는 것도 꾸준한 사례를 통해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소비하는 것의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서 늘 꿈꾸지만 실제로 용기를 내어 행동하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