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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10. 2021

고3이 23살과 사귄다니.

침울 자체였던 고3에도 재미있는 건 있었다.


대한민국 고3 교실은 침울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성적 고민에, 어느 과를 갈까, 어느 대학을 갈까 고를 수는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며 하루를 꾸역꾸역 버텨야 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형성된 분위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수험생은 모든 관심사가 성적과 대학뿐인데,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대체적으로 하루하루 우울하고 지겹다. 재미있는 일이란 안 풀리던 수리 문제가 풀렸을 때다.


19살인데 어떻게 23살이랑 사귀어? 그래 나 꽉 막혔다.


그때 학생들의 주목을 끄는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미용을 배운다는 아이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기술을 배우는 학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제과제빵, 메이크업 등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려는 여학생은 많았다. 그녀가 조금 특별해 보였던 것은 23살 대학생 남자와 사귀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범생이라고 하면 양심이 찔리니까 나름 착실했던 학생이라고 말해야겠다. 나와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그 아이가 남달라 보였다. 좋아 보였다,라고 말은 못하겠다. ‘아 그래?’ 정도의 가십 대상 머리를 식히는 icebreaking 정도로써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고3 내내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이가 있을 만큼 서로에게 무관심한 1년을 지냈다.


19살과 23살의 연애는 쉽지 않다.


19살 여고생과 23살의 남자 대학생, 군대는 다녀왔다고 한다. 모 대학의 건축학과라던 그는 도면을 그릴 때 섹시하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섹시하다고 한다. 19살 여자아이의 눈은 까다롭지 않다. 그녀는 자기 남자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잘해준다고 말도 하다가, 어느 때는 100일을 챙겨주지 않았다며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내 친구한테 어떻게 그래!”라며 또래집단의식에 투철했던 몇 아이들은 23살 대학생 오빠를 비난했다.


욕해도 내가 욕한다.


막상 친구가 비난하자 그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방어했다. 헤어져라고 대다수가 말했지만 몇 번이나 이별을 고민하더니 그녀는 자신의 연인이 다니던 대학교에 진학했다. 사실 나였다면 굳이 그 남자와 함께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녀로부터 일방적으로 불평을 들었을뿐더러 헤어질까 말까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남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19살 나에게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서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도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남자 또한 나를 볼 때 ‘어휴~’라며 한숨이 절로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건 주관적인 그의 매력이 그녀를 매료시켰고,

벌써 결혼한 지 1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오빠와 결혼했다.


결혼할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결혼했다. 신혼부부 홈카페, 신혼부부 웨딩, 셀프 촬영 등 SNS 사진이 자주 업데이트된다. 그녀와 나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지금 그녀가 나를 기억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23살이었던 그 오빠와 행복하게 가정을 이룬 것 같다.


 몇 가지 이야기로만 만나게 된 그는 그녀와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늘 행복할 수 없겠지만 그것 또한 오래 만난 그들이 알아서 잘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혈연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서로의 삶에 대해 가장 유의미한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를 응원한다.


무엇이든 ‘적령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격하게 제한하고 때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적령기’라는 말을 하며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결혼은 해야 한다, 하고는 싶다, 모르겠어 등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떤 종류의 판단에 관해 확신해서 말하는 것은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단언컨대’라며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늘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어릴 때부터 떠들고 다녔다. 나이 들어서 ‘너 결혼 못한 거잖아!’라고 듣기 싫어 부러 말하고 다녔다. 장담은 못하지만, 지금 생각이 변할 확률보다 그대로일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소중한 것을 나누는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결혼

#비혼

#장수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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