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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12. 2021

부모님도 사람이니까.

나라는 이유로 사랑이 주어지는 관계.


조건 없이 존재만으로 효용성을 입증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저 나라는 이유만으로 뜨거운 열의와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부모님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도 때로 조건부적일 때가 있다. 자신의 욕심을 자녀에게 투영시키고 주입하려는 순간이다. 부모님은 안전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좋은 것이라 믿고, 자녀에게도 권유한다.


부모님의 사랑에도 욕심이 있다.


문제는 권유가 아닌 강압과 간섭이 되는 순간이다. 품어서 키우고 사랑으로 키운 자녀가 다치지 않고 물 흐르듯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감히 부모님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헤아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덜 다치고 별 일 없길 바라는 그 마음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안전한 길이 가장 좋은 길이지 않으며, 그게 나에게 맞을지 아닐지도 장담할 수 없다. 부모님의 사랑은 그 누구도 내게 줄 수 없는 은혜로운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는 때때로 욕심과 기대가 있다.


다른 종류의 관계에서 우리는 더 많은 욕심을 내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부모 자녀 관계에도 욕심과 기대를 버릴 수는 없다. 부모가 아닌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때로 실망하고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사람이 싫다’라며 모든 종류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권태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라며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구나 라며 나를 채근한다.


아직 정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서 말을 하기 두렵지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사람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고, 그 결과 기대가 어긋나 실망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인간의 삶은 겸손, 감사, 행복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좌절과 결핍, 불안함의 비중이 오히려 더 크다.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그 자체로 결핍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밝혀두는데 종교는 없습니다.) 내가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자유와 상대의 자유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내어 주었기 때문에, 상대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면 혹은 ‘자격을 갖추었다면’  내 마음에 대해 고마워할 거라 생각한다. 



카카오톡 알림에 생일인 동료의 이름이 떴다.

꽤 사적인 시간을 보냈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텍스트 문자만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적당한 기프티콘을 보냈다.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내 생일이 다가왔을 때, 내가 챙겨준 그들로부터 안부 연락조차 없었다. 순간 ‘이기적이네’라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기대는 물물 교환이다.


하지만 내가 ‘물물 교환’을 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사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 것은 내 기준이었고, 그 시간으로 인해 챙겨주고 싶었던 것도 나의 마음이었고, 기프티콘을 보냈던 것도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전부 내 자유에 따른 내 행동이었다. 나는 나의 마음대로 그 사람을 챙겨줄 자유가 있고, 그 사람 또한 자신의 자유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욕심 없이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가.  



특히, 좀 더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는 연인은 비난 대상이 되기 쉬운 존재가 되었다. 늘 그릇된 욕심과 기대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이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연애는, 연인은, 결혼은 이라면서 스스로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와 어긋난다며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나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본다. 급부 없이 사람을 사귈 수 없다. 사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욕심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할애되었다.


사람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이고, 높게 평가할 이유가 없다. 그건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에 대한 괴로움만 늘릴 뿐이다.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을 깨닫자, 부모님에 대한 환상도 없어졌다. 나를 태어나게 해 주고 돌보아준 어머니와 아버지도 사람일 뿐이다. 사람이기 전에 ‘엄마’ ‘아빠’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려진 나약함과 모순적인 모습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어리석고, 나도 어리석은 사람일 뿐인데, 사랑과 관계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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