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연 Jan 16. 2021

브런치 악플, 싫어하는 건 자유지만.

악플에 대하여.

이해하는 건 폼이 드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같은 아픔을 겪더라도 같은 크기로 고통을 마주할 수는 없다. 굳이 상처나 고통처럼 깊숙하고 내밀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일상생활을 이해하면서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공감할 수는 없다. 한 평생을 살아온 가족도, 같은 부모의 양육 아래에서 자란 형제들도 서로에 완전히 이입될 수 없다.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타인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이해 자체를 포기하라는 건 아니다. 이기적인 인간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건 어려운 것을 노력하고 멈추지 않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누구도 타인을 자신처럼 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오해하는 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오해하는 것은 쉽다. 굳이 폼을 들여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특별한 이유도, 상황도 없이 타인을 부당하게 평가하며 오해할 수 있다.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오해하는 건 쉽다. 이성적으로 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시간을 들여 인신공격성 혐오 표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서 악플을 받았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면서 악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한된 텍스트와 부족한 글솜씨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글 전체를 읽었지만 가치관에 따라 ‘좋아할 수 없는 인간 부류’에 내가 속했을지도 모른다. ‘내향적인 흑역사’ 매거진에 발행된 글들은 나의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흑역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이유든 내 글을 싫어했을 수도 있고, 나를 싫어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이다. 누구도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싫어하는 그 마음 자체도 존중할 수 있다. 나도 누군가를 싫어했고, 싫어했던 이유가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마음은 자유지만, 표현하는 순간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표현’이다. 싫어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것이라 참견할 생각이 없지만,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자기 결정권에 따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싫어하는 마음 자체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악성 댓글은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주기 위해 고의로 남겨진다. 시간을 들여 싫어하는 마음을 담아 비판이 아닌 비난과 망상 그리고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심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삶이 불행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악플은 그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람이 마음에 여유가 있고, 자신의 현재에 만족한다면 ‘굳이’ 타인을 싫어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도 말이 아닌 문어적인 표현으로 타인을 ‘굳이’ 공격하지 않는다. 글 전체를 읽어보지 않고 욕하는 사람, 그냥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어떤 일상을 영위하는지 생각해본다.



행복의 빈도보다 분노의 빈도가 더 잦고, 따뜻한 말보다 거친 말을 많이 들었을 확률이 높다. 사람으로 인한 행복, 지금 삶에 대한 긍정과 감사함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기 때문에 쉽게 분노한다. 일상에서 어떤 식의 대접을 받으면 저런 식의 리플을 남길지 감도 오지 않는다.


무분별한 조롱과 비난이 자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줄 뿐입니다.


댓글 자체를 잘 남기지도 않고, 악플을 달아본 적도 없다. 싫어하는 건 자유지만 표현하는 순간 그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롱과 타인에 대한 멸시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자주 일어나는 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더 이상 낯설지도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별 거 아닌 나조차도 악플이 달리는데, 대중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연예인의 고충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무분별한 비난과 조롱이 ‘자유’라고 인정받으면 안 된다. 침묵하거나 알려지지 않을 때만 그건 자유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당신 자신만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다. 표현하는 순간, 당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은 서로 변수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