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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n 02. 2021

윤여정, 나는 웃고 살기로 했다.

존버의 미학


윤여정 주연 필모그래피 죽여주는 여자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건 한 예능 프로 때문이다. 당시 나는 무릎팍도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은 자신의 연기 인생과 삶에 대해 서슴없이 인터뷰했다. 윤여정 씨의 인터뷰는 꽤 솔직했고, 그래서 신선했다. 뻔한 얘기도 아니었고, 자기 연민에 빠진 지루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지난 삶에 대한 자기 객관화된 고백은 그녀에 대한 관심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솔직함은 절제된 세련미를 갖추었다. 노년 여배우에 대한 흥미가 전혀 없던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쿨한 노년.” 이후 그녀는 나에게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물론 한 예능 프로에서 호감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부러 찾아보진 않았다. 연기자 윤여정 씨에 대한 호감보다는 삶에 대한 철학자로서 그녀를 긍정했기 때문이다. 


일이 가장 필요하던 때 그녀는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좀더 보수적이고 꽤나 타인의 삶에 간섭하기를 좋아했던 때, 그녀는 이혼을 했다. 여전히 이혼은 잘못인 것처럼 여겨지고, 이혼 한가지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아는 것처럼 단죄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1980년대 한국에서 그녀는 지금보다 더 폭력적인 시선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했지만, (이혼 전보다) 방송 출연이 어려웠다.  



20대의 그녀는 <화녀>를 비롯하여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다. 어릴 때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대중과 매체는 그녀의 연기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정작 연기에 대한 의욕이 넘치던 때의 그녀는 캐스팅 선호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을 가리지 않았다. 단역, 조연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일만 했다고 한다. 그녀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감내한다. No one is in charge of you. Except you.


일터에는 함부로 말하거나 음해하는 사람들, 무시하는 사람들 등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서러움 그 자체였지만 그녀는 말했다.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하지만 그 서러움을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 같아.” 이후, 윤여정 씨는 예능 프로,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이어갔다. 그리고 몇 년 후,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다고 해서 내가 김여정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전에 쿨한 농담을 했지만, 그녀 삶에 유의미한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윤여정 오스카 수상


내가 한국인이라는 국적의 동일성 때문이 아니라, 윤여정 씨이기 때문에 그녀의 수상이 기뻤다. 숫자나 기록, 수상만이 어떤 일의 유효함이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상징을 부여하는데 쓸모가 있다. 단지 버티며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존버는 승리한다’는 인터넷 속 밈이 떠올랐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데, 오래 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건가. 윤여정 씨의 오스카 수상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자기 삶을 감내하고 긍정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갈채 같은 거랄까. 그래도, 살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 라는 식의. 


웃고 살기로 결심했어요.
“나는 웃고 살기로 했기 때문에 웃을 거야. 그래서 내가 실없는 농담을 좋아해요.”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길라잡이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녀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의 인생은) 아쉽고 서럽지만 슬픔이나 좌절에 매몰되지 않고 나아가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대중들에게 드러난 것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사건을 일대기로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계량화된 삶만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일대기로만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개인사가 노출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감히 대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잘 모르지만, 다만 그녀에게 감사하다. 살아보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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