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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어블 Dec 14. 2020

두번째 25살

마지막 40대를 보내며 새로운 도전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범벅된 시간

자신만만했었다.

굴곡은 있었지만 좌절은 없었다.

경쟁에서 밀려보기도 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있었다.


20년을 넘게 화장품업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마케터였고 브랜드매니저였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회사에서의 경험,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탁월한 감각과 업무능력,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일 배우려면 '정승희팀'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후배들 사이에 있을 정도였다. 그 누구보다 나의 일을 사랑했고, 일이 즐거웠고, 일하는 내가 좋았고, 일 할때 행복했다.


어느날, 남편의 미국 주재원 발령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남들은 다들 너무 부러워했다. 이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미국의 삶을 즐기라고 했다. 하지만, 난 행복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떠나는 그날부터 돌아와서의 나의 삶을 고민했다. 물론 미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행복했고 의미있었다. 맨해튼의 골목골목을 마음껏 경험했고, 외국사람만 보면 눈을 내리깔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영어공포증에게 헤어나올 수 있었고, 하나 있는 아들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일도 했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블로그도 운영하며 의미있는 하루 하루의 이야기를 완성해갔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며 하루도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의 새로운 기회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있을거라는 기대와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4년반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4년반의 미국생활은 나의 기대와는 완벽하게 다른 의미로 나에게 정의되었다.

'오~ 멋진 경험을 하셨군요, 미국의 경험이 새로운 경쟁력이네요, 정말 열정적인 모습과 능력이 기대됩니다.' 의 정의 대신 '49세 늙은 여성, 4년반의 경력 단절, 내년이면 50대, 무거운 연봉과 직책'의 숫자로 정의되었다.


나에게 이런일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의 어려움, 40대 중반 이후 재취업의 어려움은 능력 없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오만하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사람들을 만날수록 좌절감은 깊어져 갔다.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저희 회사로 오실 생각 없으세요?''저희 회사에서 마케팅 강의 좀 해주세요' 했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으니 그저 '가마니'였다. 

난 이제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내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일 하고 싶은데...


그래서 나의 비지니스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난 트리플A형이다. 겁도 많고,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다.

 조그마한 걱정에도 소 눈깔만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밤에 잠도 잘 안오는 나에게 20년의 직장생활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심한 고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론 도움도 주고 조언도 해주지만, 그냥 허허벌판에 나 혼자 서있는 느낌이다. 길 한복판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수 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있는데, 왜 나는 그토록 홀로서기가 겁이 나는 걸까? 주변에 창업해서 나름 잘 만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동료, 선후배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왜 나는 자신감이 없는건가'라는 생각이 앞선다.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이 일이 나의 천직이구나, 학교보다 회사가 재밌어'를 외치던 25세 정승희의 자신감 넘치게 두근대던 심장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두려움의 떨림이 아닌, 설레임의 떨림을 말이다. 


지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조금씩은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음의 열정과 패기는 없어도 중년의 경험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노련함으로 늦지 않은 도전을 해보길 응원한다. 나에게 다시 올 두번째 25살을 기대하며, 오늘도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한걸음 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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