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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나는 왜 돈 앞에서 작아질까〉

by 경자코치
퇴근길 지하철 안, 윤서는 이어폰을 꽂았지만 노래는 배경음처럼 흘러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 하루는 특별할 것 없이 흘렀지만, 마음은 어제보다 더 무겁고,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주말 데이트에서 지훈에게 털어놓았던 말.
‘남는 게 커피값 영수증뿐’이라는 그 한 문장이 아직도 머릿속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지훈의 굳어버린 표정, 말하고 나서 느꼈던 후련함과 죄책감.
그리고 집에 돌아와 텅 빈 지갑을 보며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정.
그 모든 것이 복도에서 울리는 발자국처럼 계속 뒤를 따라왔다.


나는 왜 돈 얘기만 나오면 작아지는 걸까.


지하철이 멈추자, 사람들은 서로 움켜쥔 쇼핑백을 흔들며 밀고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배달 도착했어요?"라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돈을 쓴다.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그런데 왜 나는 돈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목구멍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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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은 어둡고 조용했다.
윤서는 코트를 벗자마자 가방에서 영수증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카페 영수증, 편의점 영수증, 온라인 결제 내역이 뒤섞여 있었다.
날짜별로 작은 지출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그동안 말하지 못한 마음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 같았다.

그녀는 지난주 화요일 영수증 하나를 집어 들었다.

4,800원, 아이스라떼

작은 금액인데도 마음이 묘하게 쓰렸다.
손끝에서 아주 약한 전기가 흐른 것처럼 저릿했다.

그때였다.
가장 친한 친구 소미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미: 야, 퇴근했어? 오늘 영통하자. 너 얼굴 좀 보자.


윤서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응, 걸어”라고 답했다.

영상통화를 걸자 화면 속 소미는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평범한 모습인데 왠지 따뜻했다.


“왜 이렇게 멍한 얼굴이야? 회사에서 뭐 있었어?”
“아니… 회사는 그냥 그렇지.”
“그럼 뭐야. 말해봐.”
윤서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돈 생각만 하면 좀… 작아지는 느낌?”

소미는 일부러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그럼 돈 벌면 되지~”
농담이었지만 윤서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
소미가 고개를 들었다.

“또 지훈이랑 뭐 있었구나.”
“…조금.”
“돈 때문에 또 그랬지?”
윤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지훈 잘못은 전혀 아니야. 그냥… 내가 문제인 것 같아.”

윤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말하면서도 ‘이 말조차 내가 작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소미는 화면 가까이 다가오더니 단단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서야, 너 원래 이렇게 자신 없어 하는 사람 아니었어.”
“근데 돈 얘기만 나오면… 진짜 이상하게 작아지는 것 같아. 내가 왜 이럴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미가 1초 정도 숨을 고르고 말했다.


“네가 돈 얘기를 ‘비판’처럼 받아서 그런 거 아닐까?”
“비판?”
“응.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네가 스스로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거. 근데 사실 돈 문제는 ‘잘못’이 아니라 그냥 ‘상황’이야.”

윤서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상황…”
“응. 지금 네 상황을 보여주는 신호일 뿐이야.
근데 너는 그걸 ‘나라는 사람의 가치’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난 뒤, 윤서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소미의 말이 계속 마음을 두드렸다.
돈은 상황일 뿐인데, 왜 나는 자꾸 그걸 자존감과 연결시키려고 할까.
왜 나는 ‘돈 앞에서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불현듯, 윤서는 인스타그램을 켰다.
그리고 또 나타났다.
‘경자코치’ 계정의 짧은 릴스.

이번 릴스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돈은 당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만 ‘비춰줄 뿐’입니다.


윤서는 화면을 멈췄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가벼운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 깊이 들어왔다.

영상은 조용한 음악과 함께 계속 이어졌다.


작아지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돈 앞에서 위축되는 ‘감정의 구조’입니다.

감정은 기록할 때 보이고,
감정이 보이면 흐름이 달라집니다.


윤서는 영상 캡처 버튼을 누르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 펼쳤다.
손이 떨렸지만, 천천히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오늘 느낀 감정
– 작아짐
– 부끄러움
– 위축
– 불안

그리고 아래에 굵은 선을 긋고 다시 적었다.


이 감정은 ‘나’에서 온 게 아니라 ‘상황’에서 온 것.
나는 잘못한 게 아니다.
단지… 돈의 방향을 아직 배우지 못했을 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눈가가 뜨겁게 젖었지만, 이번에는 무너지기 위한 눈물이 아니었다.
안도에 가까웠다.

윤서는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감정이 보이면 루틴이 시작된다.”


노트를 덮으며 아주 작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오늘의 작은 기록이, 어쩌면 앞으로의 큰 변화를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 나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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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자코치 메모 ★

돈 앞에서 작아지는 감정은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상황’과 ‘자기 가치’를 구분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당신이 느끼는 불안, 위축, 부끄러움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 감정은 “지금의 방향이 불명확하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재무 루틴의 첫 단계는 기록이 아닙니다.
감정 이름 붙이기’입니다.


이 단계가 시작되면
감정 → 상황 → 구조 → 루틴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윤서처럼 오늘, 단 한 줄이라도 적어보세요.


“이 감정은 ‘나’가 아니라 ‘상황’에서 왔다.”

이 문장 하나가 불안을 반으로 줄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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