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의 좌충우돌 캐나다 영주권 및 취업 도전기
아파트도 우여곡절 끝에 저렴한 곳으로 구하게 되었고 좋은 캐나다 노부부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은 나에게 불만이 없었다. 두 분 다 교회에 나가시는 크리스천이었고, 더군다나 샤샤 고양이는 처음엔 낯을 가리더니 어느덧 나와 장난치는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한 달 가까이 맡겨두었던 짐도 옮겨와 내 방 옷장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Kijjiji.com에 올라온 컴퓨터 책상이 $10에 나왔길래 잽싸게 연락하여 바로 구입해 왔고 내 컴퓨터 세팅도 모두 끝냈다. 침대는 퀸 사이즈로 노부부 딸이 쓰던 침대였는데 나보고 그냥 쓰라고 하신다. 그런데, 침대 시트 정도는 빨아서 깔아주셨으면 했는데 군데군데 따님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시트를 모두 벗겨서 세탁기에 넣고 바로 돌렸다. 그래도 한 달 $300에 이 정도의 공간이 있는 방을 어디서 찾겠는가?
집고 구하고 이사도 끝내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직장이 정해질 때까지 나는 열심히 Poparide (카풀) 서비스를 등록해 놓고 캘거리와 밴프 간 운행을 매일 계속하였다. 10월 달이 되니 이제 눈도 제법 온다. 노부부는 내가 카풀로 돈을 버는 것으로 보고 신기해하셨고 자기들도 하면 안 되겠냐고 하길래, 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눈도 오는 데다 노부부가 눈도 어두우실 것이고 특히나 모바일 앱을 사용해서 운영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서이다. 돈 몇 푼 벌겠다고 두 분의 남은 여생이 더 짧아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전에 얘기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1) 에드먼턴 IT회사 2) 캘거리 항공 관련 IT회사 3) 카를로스가 있는 미국 IT회사 이 세 군데였다. 하지만 한 군데도 확정된 것이 없었고 모두 희망 사항이 될 수도 있는 직장들이었다. 차 선택은 IT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직업학교나 학원이 아닌 식당 조리사였다. 그래도 레드씰 자격증이 있고 타 직업 대비 직장 구하기는 나름 수월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리사 말고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캘거리 공항과 밴프 간 셔틀버스를 운행해 보겠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캐나다에서 경력이 없이 IT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조리사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부담감과 업무 대비 급여가 높지 않아 우리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는 쉽지 않았다. Poparide를 하면서 늘 생각이 셔틀버스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하루 두 번 왕복하고 차량은 9인승 정도를 구입하여 평균 7명 정도 승객을 실어 나른다면, 한 명당 약 30불을 받으면 단순히 계산해도 210불에 왕복이면 420불, 두 차례 왕복이면 840불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스비, 차량 감가상각비, 수리비, 웹서비스 운영비, 보험료 등등 따져 보면 이 돈의 반 이상이 고정비용으로 지불이 되어야 했다. 일주일에 6일 운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 수입을 400불로 잡고 일주일에 2400불, 한 달이면 만불 정도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예상 금액은 거의 만차라고 가정했을 때 얘기다. 광고도 별도로 해야 하고 웹사이트 개설에 셔틀버스 운행을 위한 커머셜 라이선스는 별도로 취득해야 하는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었다. 2019년 11월까지 그레이하운드가 운행했을 때만 해도 많은 승객들이 이 버스를 이용했고 매년 5월부터 8월까지는 on it 버스가 단돈 $10에 운행하기 때문에 타산이 맞을지도 궁금했었다.
차선책은 우선 제쳐두고 먼저 카를로스에게 전화를 하였다. 카를로스는 회사 내에서도 중요한 직책이었기에 늘 바쁘고 전화를 하여도 잘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 날도 통화 연결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전화를 하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4번 만에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카를로스의 목소리는 정말 반갑게 들려왔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나마 나누었고, 카를로스는 자기가 일이 바빠 회사 사장과 나에 대한 고용과 관련하여 얘기를 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화 내용은 상당히 긍정적이었고, 10년 전 나의 열심히 했던 모습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자기들 회사에 내가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언급하면서 나에게 희망을 던진 후 전화 통화를 마쳤다. 이제 또 다른 기다림이다....
나의 어깨에 짊어진 짐을 어서 빨리 벗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조급해지는 것을 느정해끼면서도 가장 적합한 직장이 나에게 정해지기를 기도했다. 에드먼턴 회사와 캘거리 회사 두 군데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눈은 10월 인데도 2, 3일 간격으로 계속 내렸고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카풀 서비스를 매일 같이 하면서 푼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한국으로 보낼 돈은 없었고 캐나다에서 사용할 정도의 돈만 벌 수 있는 정도였다.
카를로스와 11월 초에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후 며칠,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도 전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회사 사장과 얘기했는데 혹시나 사장이 반대했을까? 아니야, 카를로스가 쉽게 그런 얘기를 할 친구는 아닌데... 너무 바빠서 내 일을 챙길 시간이 없었을 거야.... 에드먼튼, 캘거리 회사에서도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느덧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11월도 중순을 지나 20일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카풀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쳐다보니 카를로스로부터 온 전화였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고, 카를로스가 미안해하면서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카를로스로부터 답을 듣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