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김석기의 미술여행]
남루한 가죽옷에 술병을 들고, 담배를 피우며 웃음을 던지는 무절제한 젊은이들이 통기타를 두들기고 있다. 어쩌면 마약에 취해 몽롱해진 눈빛인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담뱃불도 빌리고, 무심한 표정을 한 얼굴 속에 찡끗하고 던지는 그들의 미소가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젊은 히피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들만의 안식처를 만드는 아르바뜨 거리의 풍경이다.
마치 연극 무대의 세트 위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듯 히피들이 놀고 있는 골목의 담벼락 색채가 예사롭지 않다. 총천연색의 크고 작은 낙서들로 온통 범벅이 되어 담벼락이 메워져있다.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추상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배경이다.
그 속에서
'초이를 사랑한다.'
'초이는 영원하다.'
라는 글귀가 시야에 들어온다.
러시아 팝음악의 영웅 ‘빅토르 초이’를 추모하고 흠모하는 글귀들 일색이다. 바로 이곳이 ‘빅토르 초이’가 노래를 부르던 곳이라고 한다. 단층의 허술한 집이 바로 초이가 기거하던 곳이다. 지금은 그 집 벽 아래로 몰려든 히피들이 낙서도 하고 음악도 즐기며 빅토르 초이를 흉내 내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의 삶 속에서 ‘빅토르 초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빅토르 초이는 1962년 카자흐스탄 공화국 크질 오르다에서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다.
그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세로프 예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성적 부진으로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고, 레닌그라드 시립 기술 전문학교에서 공부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17세 때부터 작곡에 열중하여 많은 작품을 썼다.
초기에는 레닌그라드 거리의 삶과, 인간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 등을 소재로 하여 순수한 록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 러시아 정부는 록 음악을 정상적인 음악으로 보아주지 않았으며, 록을 부르는 젊은이들을 마약 중독자나 히피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1970년대부터 러시아에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그 선두에는 ‘빅토르 초이’가 있었다.
1982년 '빅토르 초이'는 록 밴드 키노(Kino)를 결성하고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였다.
키노는 첫 앨범으로 '45'를 발표하였고, 이어서 '46'도 발표하였다. 앨범의 제목이 되었던 숫자의 의미는 단순히 앨범을 재생하는 시간에 불과한 순수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만큼 빅토르 초이의 초기 음악은 순수하고 감성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의 음악에 점점 정치적 목소리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였고, 공산당의 통치 하에서 원치 않는 곳으로 억지로 끌려가고 있는 인민들을 대변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외곽전철'이었다.
곡을 통하여 외곽으로 끌려가야만 하는 인민들을 대변하면서 정부에 항거 하는 내용이 내포된 작품이었다. 외곽전철은 바로 정부로부터 금지곡이 되었고, '빅토르 초이'는 정부가 주목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이후 정부에 반항운동을 전개하던 젊은이들 사이에 '빅토르 초이'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고, 키노는 레닌그라드 록 클럽 콘서트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음악 '내 집을 비핵화 지대로 선포 한다'를 발표하여 1등을 하면서 '빅토르 초이'의 명성은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87년에는 키노의 7집 앨범에서 빅토르 초이가 직접 자작한 '그루파 크로비(혈액형)'를 발표하여 러시아에 키노의 마니아를 결성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게 되었고, '빅토르 초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루파 크로비'를 통하여 러시아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러시아 젊은 청년들의 외침은 '그루파 크로비'로 대신 되었다.
'그로파 크로비'는 '빅토르 초이'를 러시아 젊은이들의 우상과 영웅으로 만들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게 되었다. 1988년에는 '빅토르 초이'가 러시아 영화 ‘Assa’에 단역으로 데뷔하기도 하였고, 1989년에는 러시아 영화 이글라(바늘)에 주연으로 출현하여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오데사 영화제에서 최우수 배우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90년 모스크바 레닌스타디움에서 열리 콘서트에 6만 2천 명의 군중이 몰려들면서 키노의 멤버 '빅토르 초이'의 영웅적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해 8월 15일 아침 ‘빅토르 초이’는 새 앨범 녹음을 위하여 차를 타고 집을 출발하여 달리던 중 버스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로 생을 마감하였다.
차가 부서지고 자동차의 바퀴를 찾지 못할 정도의 큰 사고 현장에서 다행히 ‘빅토르 초이’가 남긴 목소리 테이프를 찾아냄으로써 키노의 유작 앨범 ‘블랙 앨범’을 만들 수가 있었으며 그 앨범은 ‘빅토르 초이’를 러시아 최고의 록 영웅의 전설로 만들었다.
그가 죽은 뒤 8월 17일 러시아의 유명 잡지 프라우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빅토르 초이는 젊은이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일이 없었고, 그의 진실된 삶은 언제나 대중에게 그의 음악과 동일한 모습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그가 부른 노래대로 살았으며 그는 러시아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
러시아 팝의 전설로 러시아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던 가수 빅토르 초이는 상트페테르브르크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너무 짧게 살다간 '빅토르 초이'의 삶은 러시아에 가장 굵은 변혁의 획을 그었다. 그의 피 속에 한국인의 긍지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그의 죽음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음악과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러시아에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Profile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의 미술여행] 러시아 팝의 영웅 빅토르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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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설은주 giver-@naver.com
글 :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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