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의 새 이름
예전에 북경에서 속성과정으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있었던 일이다. 같은 반 급우들과 택시를 탈 기회가 생겨 배운 걸 한번 써먹어 보고 싶은 마음에 택시기사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기사는 피식 웃더니 나보고 ‘정신병’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동승인 중 한 급우가 중국인들은 농담 비슷하게 곧잘 그렇게 말한다고 일러주었다. 문화와 표현의 차이라니 어쩔 수 있나, 괜히 말을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는 찜찜함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중국 드라마를 보다가 정신병이라는 말이 실제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상대가 다소 예민하고 까다롭게 굴 때 별 스스럼없이 상대를 정신병이라고 쏘아붙이지 않는가. 그러면 상대방도 가벼운 욕을 들어먹은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우리 같으면 가까운 사이라도 적잖은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로 미친 듯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정신병자라고 하면 상당히 민감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각종 매체에서는 주로 ‘조현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에 대해 2011년경 붙여진 새로운 이름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과 이미지가 개명을 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정신분열이라고 하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상반된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도 같고 사이코패스나 다중 인격 장애 등을 모두 포함하는 명칭으로 오해를 받아왔었다.
그러한 고정관념은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 때마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위축시켜왔다. 그래서 가족처럼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남이 알까 봐 감추는 분위기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증세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현병에서의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기는 질환으로 신경전달물질의 조절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주된 증상은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 심하게 와해된 행동, 긴장하는 행동, 음성 증상 중 2가지 이상이 나타나고, 이러한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조현병으로 진단받는다고 한다.
망상이란 이웃이나 특정인이 전자파를 이용해 자신을 조종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하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등의 피해망상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망상의 내용은 체계화되어감에 따라 더욱 복잡 미묘하게 변화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런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망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환각은 환청이 가장 많으며 환시, 환취, 환촉 등도 있다. 음성 증상에는 정동둔마, 운동성 실어증, 무의욕증, 무쾌감증, 주의력 손상 등이 있는데 다른 증상들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징이 있다.
조현병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크게 보면 유전 요인과 임신 중의 문제, 스트레스 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예전에는 동네를 대표하듯 각 동네마다 이런 환자가 하나둘씩 있었다. 짓궂은 동네 얘들한테 걸리면 돌팔매질도 당하는 곤혹을 치르지만 평소에는 동네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 숙식도 해결하며 마을의 일원으로 식구처럼 더불어 살아갔다. 그런데 요새는 세상이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인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이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 같다. 따라서 요즈음은 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감정적 교류를 할 대상이 없어져서인지 공격성도 예전과는 남다르다. 묻지마 폭행은 물론 묻지마 살인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조울증 치료 전문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발생했다. 환자는 의사가 자기 머리에 폭약을 집어넣었다는 등 범행동기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시종일관 횡설수설이었다고 한다.
환자가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것도 문제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기가 무슨 죄를 왜 저질렀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진주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이 사람은 평소에도 가끔 말썽을 일으켜 이미 관할 지구대에서도 인지하고 있던 터라 질환자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질환이 있는 걸 알고 있더라도 이를 관리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관련법은 오히려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입원의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멀쩡한 부모나 친척을 정신병자로 둔갑시켜 가둬버리고 재산을 가로채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은 2016년경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실효되고 이듬해 ‘정신건강증진법’으로 개정되었다.
강화된 내용을 보면 과거에는 입원 필요성이 있거나 자·타해 우려가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개정법은 양자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또한 입원 2주 후 계속 입원 필요시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하고 입원 1개월 내 독립된 심사위원회에서 적합 여부를 심사하게끔 하여 제3자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였다. 정신질환자의 인권도 중요하므로 보호받아야 하고 범죄로 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반면 정신질환이 확실하고 위험성이 있다면 모두의 안전을 위해 관리되고 제대로 치료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조현병의 경우 완치는 힘들더라도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얼마든지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가능하다고 한다. 주위에서 관심과 애정을 기해주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최소한 자·타해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새의 양 날개처럼 조화를 이뤄야 제 기능을 발휘하고 안정적인 사회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일시적인 비정상도 정상의 일면이라는 인식전환과 포용력을 가지고 건강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