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진하고 뜨거운 커피로 아침의 졸음을 떨쳐내고 정신이 번쩍 들고 싶은 나는 보통 에스프레소 방식의 추출을 선호한다. 원두 원산지로 유명한 것도 아닌데 커피 하면 이탈리아를 꼽는 이유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처음 발명하고 계속 발전시켜 온 곳이 바로 이탈리아이기 때문이다. 1884년 안젤로 모리온도(Angelo Moriondo)가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고안하여 특허를 받았다. 1946년 아킬레 가지아(Achille Gaggia)가 레버를 통해 압력을 조절하는 피스톤식 커피 머신을 개발하여 현대식 에스프레소 머신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명품의 역사를 읽었을 때도 보통 100년 이상 된 역사와 장인들의 직업적 사명감에 놀라곤 했는데 내가 매일 아침즐겨 마시는 카푸치노에도 이런 오랜 세월 동안의 과학적 실험과 끊임없이 더 맛있는 커피를 효과적으로 추출하기 위한 개발이 지속되었다는 것에 새삼 감동하게 된다. 그 역사와 전통을 알기 때문인지 이탈리아에서 카페에 가보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대단히 신중하달까. 복장부터 정장으로 갖춰 입고 깔끔하게 단장하고 바(bar)에 서있다.
바(bar)에서 서서 마시는 것과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 것의 가격 차이가 3-4배 정도까지 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리가 아픈데도 꾹꾹 참고 바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는 여행객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일정이 바빠서 잠깐 서서 마시고 나가야 한다면 바에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다리도 아프고 일정을 정리하며 간단한 메모를 남기거나 (지금의 감흥을 눌러 담은) 엽서라도 한 장 쓰고 싶다면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카페에서 테이블에 앉아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카페를 충분히 감상하고 즐기며 카페(café)를 음미하기를 추천한다. (한국의 커피 값이 너무 올라서 그럴싸한 인테리어의 카페에 찾아가 인당 7-8000원대의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시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탈리아 카페 물가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 아! 커피의 양에는 놀랄 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실전편.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통 전면에 보이는 바와 바의 뒤편에 (사실 동선으로 생각해보자면 문을 열고 들어선 바로 옆에) 계산대로 나눠져 있다. 먼저 계산대로 가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한다. (담배를 파는 곳처럼 생겼지만, 계산기가 있다면 거기서 커피를 주문하는 게 맞다.) 영수증을 받아 바에 있는 바리스타에게 건네면 영수증을 찢고 (놀라지 말자) 주문한 음료의 수에 맞추어 커피잔 받침과 스푼을 미리 준비해둔다. (머그잔에 찰랑찰랑 커피를 담아서 턱 하고 놓아주는 것보다 격식(?)을 갖추는 느낌이랄까)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는 밀도가 높고 쌉싸름해서 보통 설탕을 넣어 마신다. 커다란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는 설탕을 마음껏 넣으면 되는데 물 인심 야박한 유럽에서 설탕 인심은 어찌나 좋은지 놀라게 된다. 설탕을 하나 가득 (때로는 2-3개 넣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미 턱은 '우오-' 하고 빠져있다.) 설탕을 넣은 뒤 휘휘 저어 마시거나 젓지 않고 그대로 마셔서 첫맛은 쓰고 끝 맛은 달콤하게(고진감래를 느끼고 싶은 걸까) 마시는데 나는 액체가 단 것은 선호하지 않는 관계로 초콜릿을 곁들여 먹거나 아침에는 크로와상 같은 식사빵과 함께 먹는다. 계산대에서 페이스트리류도 같이 계산해야 하는데 단순한 크로와상이 아닌 다른 빵이 먹고 싶은 경우 (케이크 진열대 같은 곳에 다양한 빵이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처럼 제품명이 쓰여있지는 않다.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빵 이름을 불러서 주문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안타깝지만 보통 진열대에 가서 손으로 가리키기 전법을 사용한다.
단순히 쓰기만 하면서 양도 작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에 대한 애정으로 오랜 시간 동안 기계를 발전시키고 또 머신의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하기 위해 항상 애쓰는 성의와 열정이 가득한 뜨겁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본토의 고장에서 느껴보시길.에스프레소가 부담스럽다면 설탕을 가득 넣거나 우유가 든 이탈리아식 카푸치노라도 주문해서 시도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