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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ar 06. 2020

[사원 일기] 코로나 바이러스와 밑바닥의 공통점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명징하게 드러난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비구름을 이고 나온 출근길에는 이상하리만치 지하철 문 닫히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묘하게 신경을 긁는 것이 마치 전시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같았달까.

회사로부터 '긴급' 딱지가 붙은 재택근무 공지를 받고 집에 가는데, 메일 창을 닫고 나와 본 바깥세상은 기묘하리만치 멀쩡하다. 못 묻을 것이라도 묻은 옷처럼 감염 소식으로 잔뜩 오염된 포털을 보고 있노라면 대로변에서 발 달린 바이러스가 사람을 베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이상한 괴리는 재택근무를 하는 기간 내내 계속될 것이다.

내가 야마를 쥔 채 기획해 놓고 막상 기획안이 통과되고 나니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반나절 내리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돌아다녔다. 과장님, 주임님, 과장님... 협업의 반은 말귀라는데, 반복되는 피드백에 지레 주눅 드는 하루. 내가 이렇게 멍청했었나. 우리 막내 일 좀 하네, 하는 소리를 딱 한 번만 더 듣고 싶어서 혼자 끙끙댈 땐 몰랐다. 일은 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내 안에서 조직을 겉도는 느낌이 사라지는 건 점점 더 투명하게 밑바닥을 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아래로, 더 아래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을 바보 같은 질문들. 바보 같은 걸 알면서도 지금 틀렸단 걸 확인받지 않으면 영영 찝찝하게 남을, 고집과 습관. 개운하지 않게 퇴근하는 날이 더 많아야 한다. 이 더러운 기분이 나를 키울 테니까.

이 시간 분명 북적여야 할 '러시아워 2호선'이 텅 비었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건 바이러스인 걸까 공포인 걸까. 고개 한 번 돌리면 곰팡이처럼 증식하는 숫자에 비명을 지르지 않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숫자는 곧 그 자체로 통제의 증거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공포는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눈에 보여서 생기는 것이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하지만 한 마리 모기도 결국 눈에 보여야 잡는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거다. 욕심이 많은 막내 사원의 밑바닥도, 사람 잡는 바이러스도. 애당초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건데 이토록 끔찍하리만치 보인다는 건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틀리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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