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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May 03. 2024

두 번째 생의 길에서.

너를 키우며 다시 돌아가는 나의 생

"엄마. 어헝...ㅜㅜㅜ 이거 언제 다해.
아무리 해도 안 끝나.
언제 9단까지 다 그려....허엉."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받아 든 어마어마한 양의 숙제를 두고, 숙제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꺼이꺼이 울고 있던 저를 보며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그러게,

엄마가 학교 다녀오면 숙제 먼저 하라고 했지."


그리고 그 말씀을 끝으로, 엄마는 제 곁을 지키며 응원을 전할 뿐 절대 손을 보태지는 않으셨죠.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신나게 고무줄을 열판이나 하고 돌아온 것은 저였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할 말은 없었지만, 제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도와주지 않자 그 나름의 서러움은 더 깊어졌죠.


그런데, 그렇게 꺼이꺼이

울며 그리고, 울며 쓰고, 울며... 그리.. 다가.....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시나요?


제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조각조각 잘린 영화 속 한 장면들의 모음처럼 남아 있습니다. 음... 요즘으로 치면, 유튜브 쇼츠나, 릴스처럼 딱 중요한 사건의 전후 일부만 다시 보기 가능하다고 해야 할까요. 근데, 그 기억들이 남아있는 주기라는 것이 참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떤 해는 꽤 많은 이벤트들이 기억나고, 또 어떤 해는 한 두 개 정도의 추억만 드문드문 생각이 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담임 선생님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 것은 물론이고 몇 반이었는지도 가물한데, 유치원 시절은 짧은 단편영화 하나는 나올 정도로 갖가지 추억이 떠오르는 식이죠. 아마도, 정말 즐거웠거나, 정말 슬펐거나...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된 그런 소중했다고 느낀 순간들이 오래 간직할 기억 속에 저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과연 이 10살의 꼬마에게 오늘 하루를 얼마나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궁금해지고는 합니다.

'성인이 되어 돌아볼 때
너의 기억에 남는 하루일까,
아니면 남지 않는 하루일까?'

그리고 아이가 제게 나쁜 일이 있다고 한 날에는, 부디 잊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좋은 일이 있었던 날에는 기왕이면 기억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별다른 일이 없지만, 그저 조용히 소소하게 행복했던 날들도 짧은 순간이나마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아주면 좋겠다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기억들 중 좋은 기억들은 훗날 힘들고 지치고 슬플 때 하나, 둘 꺼내보며 힘내주기를 바라보고는 합니다.


제게도 그런 기억의 보물단지가 있습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도, 생각해 보는 것 만으로 마음이 뜨끈해지는... 그래서 아주 지치고 힘들 때, 속이 든든해지는 그런 순간들 말입니다.



아마 그때의 저는 지금 우리 아이보다 더 어린, 여덟 살이었고, 학교에 입학한 지 오래지 않은 어느 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앉아 학교 숙제로 받은 “구구단 카드 만들기 “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함도 잘 기억이 안나는 첫 학교 선생님이지만, 그 숙제만은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꽤 충격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문제의 구구단 카드는, 도화지를 잘라 만든 손바닥만 한 카드 앞 면에는 구구단을 쓰고 뒷면에는 그 구구단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만드는 것이었는데, 1단부터 9단까지 총 81장의 카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숙제였어요. 방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앞 :  3x3=9  
뒤 : ㅁㅁㅁX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내용은 간단한데, 문제는 2단, 3단, 4단... 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지금 구구단을 외우려고 이걸 만드는 것인지, 모양자랑 씨름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간다는데 있었습니다. 학교 다녀와서 신나게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저녁즈음 시작한 숙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오래야 걸리겠지만, 그래도 못해가지는 않겠지 했는데.. 웬걸요. 그려도 그려도 끝이 없는 숙제에 점점 울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번 넌지시 숙제를 먼저 하라는 가이드를 주셨던 엄마는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던 중이셨습니다. 그러니,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안간힘을 써서 해보는데 5단 즈음 다다르니 이미 온 힘을 다해 잡고 있는 연필 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에는 빨간 연필자국이 깊어졌고, 손가락은 아파오고, 잠은 쏟아지고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딱 내일 숙제 못해가고 혼날 운명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어요.

숙제를 안 해가자니 선생님은 무섭고, 해보자니 시간은 부족하고, 밤을 새우는 일 같은 것은 엄두도 안나는 여덟 살 어린이는 8단을 지날 즈음부터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구구단 카드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급기야는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펑펑 울고 나니 눈은 퉁퉁 붓고 더 나른해진 눈꺼풀이 마구 내려왔나 봅니다. 그렇게 8살의 저는 한 손에는 모양자를, 한 손에는 연필을 꼭 쥐고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아주 푹 들어버렸습니다. 그 사이 깊은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깨운 것은, 낮은 아빠의 목소리였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를 하며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누워있는 제 코 끝을 스쳐 오고 가고 있었죠. 보통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던 아빠는, 아침에 늘 저와 동생이 일어날 즈음에는 이미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결에도 좀 이상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주말이 아닌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서 말이죠.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밝은 빛이 눈으로 마구 들어왔어요.

".................... 엉??????????? 아침이야?????????!!!!!!!!!!!!!"

아주 개운하다 생각하며 눈을 떴지만, 아침이니 곧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과 어디까지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숙제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나 숙제 다 못했는데..
구구단 카드 다 못했어...ㅜㅜㅜㅜㅜ

근데, 눈물이 막 터지려는 찰나. 머리맡 테이블에서 엄마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셨습니다.


9단을 쓰다 울다 쓰러져 잠든 제 대신, 엄마 아빠가 문제의 구구단 카드를 완성해 두신게 아닌가요.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9X9=81의 99개의 동그라미까지 다 완성해서 깔끔하게 클립까지 꽂아 완벽한 구구단 카드를 만들어 두신 것을 내미는데,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요정할머니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얼굴이 함박웃음이 피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죠. 아직도 그날 아침만큼 포근하고 따스한 공기속에서 자고 일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느껴지는 건, 저를 둘러싼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런 어떤 하루가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깟 숙제 한번 안 해간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께 한 번 혼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쩜 그리 걱정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카드를 만들며 정말 구구단이 외워진 건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하지만 만약, 그날. 숙제하며 울고 있는 제 옆에서 엄마가 함께 숙제를 해주셨다면, 전 아마 자립심을 기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또는, 그냥 하는데 까지만 하고 자라던가 숙제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이야기가 있으셨다면 학교 선생님 말씀을 거의 신처럼 떠받들던 제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갖은 애를 썼지만, 다 해내지 못한 숙제를 가지고 그대로 학교로 향해 선생님께 혼이 났다면... 아마도, 그다음에 비슷하게 버거운 숙제를 받았을 때 '어차피 못 할 것 같으니 포기.'라며 패배자의 방향으로 걸었을지도요. 그렇게 한 결만, 한 시점만 달라졌어도 그 이후 완전 다른 길로 뻗어나갔을 여덟 살 어린이에게 정말 적절한 순간에 닿은 부모님의 도움은 그 후 꽤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삶에 어떤 고비가 닥친다면 내 뒤에 날 지켜보아주고 힘든 순간을 함께 이겨내 줄 든든한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기에,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살아가며 순간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몸이 약해지는 날이면 여덟 살의 그날 아침, 눈 뜨자마자 보았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떠올려보고는 합니다.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 저도 부모가 되었습니다. 제게 힘이 필요한 순간이면 추억 보석함에 들어 있는 이런 날들을 꺼내보며, 저도 제 아이에게 그런 순간으로 남는 날이 언제일지 궁금해하는 그런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빨라도, 더 늦어도, 더 과해도 안 되는 딱 적절한 시점과 방법이 늘 고민스럽습니다. 제가 더하는 한 번의 결이 아이의 삶의 방향을 많이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이죠. 저와는 다른 언어와, 문화와 다른 세대를 살아갈 아이라 한층 더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의도치 않게 한 어떤 말과 행동들은 이미 아이의 방향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 '육아'라는 여정이 아찔하게도 느껴집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추억 주머니 안에 어떤 구슬이 들어앉아 있을지는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죠. 그래서, 더 자주 제가 가진 추억들을 돌아보며 그 덕분에 살아온 시간들도 생각해 보고, 그 때문에 잘못된 시간들도 돌아보며 이미 지나온 생을 꾹꾹 다시 짚어봅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며, 지나온 제 삶을 두 번째 다시 지나가 보는 길입니다. 이 아이가 커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또 자기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그걸 지켜보며 세 번째 생의 길을 또 지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이시라면... 제 소개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저는 "맨모삼천지교"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맹모삼천지교'에 오타난 것 아니냐고 물으시는 분들꼐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맨하탄으로 갔다가 거기서 아이를 키우던 시간을 지나며 "맨(하탄)삼천지교"가 되었다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케터로 브랜딩을 하며  17년의 시간을 지나, 사람들의 행동속에 감추어진 "conventional wisdom(일반적인 통념)"을 호기심을 담아 생각해 보는데서 시작 되었습니다. 

제가 읽고 쓰는 기록들은, 인스타그램 @sunny_story_of_my_life 과 Threads @sunny_story_of_my_life 에도 공유하고 있으니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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