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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사회, 그 끝은 어디일까

예일대 신입생의 입학 취소 사건의 전말

by 맨모삼천지교

한국 사회가 ‘공정’이라는 단어에 극도로 민감해진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연달아 터진 사회적 신뢰의 균열 사건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9년의 이른바 ‘조국 사태’입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은 단순한 ‘입시 비리’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 청년들이 믿고 의지하던 공정 경쟁의 룰 자체가 흔들렸다는 분노로 번졌습니다. 특히 그의 자녀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스펙을 쌓기 위한 ‘기획된 서사’가 상류층 특권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또 하나의 논란이 젊은 세대의 공정성 감각을 뒤흔들었습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사태, 이른바 인국공 논란’입니다. 공사는 보안검색요원 약 19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공기업 채용을 위해 수년간 준비해 온 청년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는 반발이 거세졌습니다. 같은 청년 세대 내에서도 ‘정규직의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터져 나온 사건이었죠. 청년들은 ‘공정 경쟁’보다는 ‘기득권 내지 정책 수혜자에게만 유리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2030 세대는 점점 더 정직함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된다”, “기회는 있는 자에게만 열린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능력보다 줄이 더 중요하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자조 섞인 표현들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단 한 명만이 “한국 사회는 공정하다”라고 답했고, 무려 62%는 정반대로 “공정하지 않다”라고 느끼고 있다고 해요. 특히 수도권에 사는 시민의 72.6%, 그리고 2030 세대의 65%는 “이 사회는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성에 대한 ‘민감도’는 단순한 정서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불공정 사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노력만으로 기회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를 품게 만들죠. 특히 입시와 취업 같은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는 ‘정직하게 임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라는 고민을 한 이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고민하고, 때로는 선을 넘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을 매일 저녁 뉴스를 통해 자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선택들이 쌓일수록, 사회의 신뢰는 점점 더 약해지게 되죠.



2025년 가을.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예일대학교에서 최근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달 전 입학한 신입생의 입학이 학교 측에 의해 전격적으로 취소된 것이죠.


그 중심에는, 이름도, 출신지도, 고등학교도 모두 조작된 ‘완벽한 가짜 신분’으로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에어메일의 보도 (각주참조)

모두들 그녀를‘Katherina Lynn 카트리나 린’이라고 알고 있었고, 랜먼-라이트 홀(Lanman-Wright Hall) 신입생 전용 기숙사 4인실에는 그녀의 이름과 출신지가 [카트리나 린- 티오가, 노스캐롤라이나]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사뭇 달랐죠.


사실 그녀는 전혀 다른 이름의 캘리포니아 출신의 중국계 아시안 미국인이었습니다. 이름, 주소, 고등학교, 성적표, 추천서, 세금 서류… 까지 모든 것이 가짜였던 거죠. 그녀는 ‘북다코타의 작은 마을 티오가 출신 소녀’라는 허구의 정체성을 만들어 예일대에 합격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자란 경험이
나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에세이로 썼어요.
담당 입학사정관이 제 지원서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어요.
입학사무처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했죠. - 카테리나 린-


하지만 학교 캠퍼스에 도착하면 “다시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할 계획이었던 그녀의 계획은,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 룸메이트들에 의해서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생활태도나 독특한 연애방식 등으로 룸메이트들의 눈밖에 난 지 오래지 않아, 책상 위에 놓인 수하물 태그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한 룸메이트는 카테리나를 신입생 상담 교사에게 신고합니다. 예일대는 결국 룸메이트의 신고로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입학 한 달 만에 학교에서 퇴출됐습니다.

충격적 이게도, 이 모든 건 그녀 혼자 준비한 조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출처: 예일 데일리

단순히 보자면 이 사건은, 한국과 전혀 상관없는 미국 내 아시안 학생의 입학 사기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입시 비리와 허위 스펙, 불투명한 정성 평가에 대한 논란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문제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정체성을 바꾸는 전략이, 한국에서는 논문과 비교과 활동을 조작하는 전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차이랄까요.


논문 저자 조작과 ‘브랜딩 된’ 고등학생들

2022년, 한국 교육부는 미성년자 공저자 논문 1,033건을 전수조사하게 됩니다. 뭐, 교육부가 갑자기 자진해서 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일련의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조치였죠.

이 조사 결과, 96건이 ‘부당한 저자 등재’로 판정되었고, 고등학생들이 SCI급 국제 학술지 논문에 실질적 기여 없이 이름을 올린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상당수는 해당 논문을 입시 서류로 제출해 서울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요. (각주참조) 이 결과에 집중적으로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되자, 다양한 사례들이 물 위로 떠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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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붙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마케터로 일하던 시기를 지나. 일본-뉴욕-한국을 오간 삶 속에 생긴 눈으로 아이를 키우며, 함께 자라는 중인 글쓰는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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