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지막 이야기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바퀴를 굴리느라 온통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다가온 스티브의 눈은 날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의 눈은 그의 눈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의 시선은 온통 그의 다리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
“어..어떻게 된 거야...
언제 이렇게 된 거야...?
아니, 왜 이렇게 된 거야?
무슨 일이야?
다리가 왜.....”
마치 그동안 내 입에서 말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힘주어 막고 있던 가림 막이라도 사라진 듯 내 입에서는 순식간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가는 나의 질문도, 시선도, 그럴만하다는 듯 가만히 듣고 있던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합병증이.. 었대.
사실 지금도 정확히 뭐가 원인인지는 몰라. 그 날, 네가 짐을 가지고 나간 다음... 나도 기분이 뭐라 말할 수가 없어서 동네에서 지미랑 같이 맥주 한잔 하고 들어왔는데.
.......
그다음 날부터 기침이 심하게 나고 도저히 일어나 앉을 수가 없을 정도로 열과 근육통이 심했어. 기침도 가슴이 너무 아플 정도로 심해지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는 거야. 약을 처방받아먹었는데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혼자 도저히 숨도 쉴 수가 없어서 결국 입원하게 되었었어.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테스트를 해도 결과는 계속 폐렴이라고만 나오고... 의사들도 코로나일 가능성이 있지만 아닌 것도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리고 만약 코로나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심한 감기처럼 지나간다고 하니, 나도 그냥 심하게 좀 아프지 그냥 지나갈 줄 알았지. “
“그런데...?? 그런데 왜 다리가...??”
“ 병원에서 큰 차도가 없고 점점 심해져서 결국 ICU(Intensive Care Unit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입원 후 나흘 즈음 지났을 무렵부터는 난 기억이 없어. 혼수상태였거든. 아버지 말로는 .... 그즈음부터 내 왼쪽 다리가 색이 변하고 엄청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는데... 바이러스로 인해 몸의 염증 수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다리로 혈액 순환이 안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 “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수 차례 숨을 들이쉬고 호흡을 고르며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크지 않은 내 손으로도 한 줌에 잡힐 것 같은 가냘퍼진 어깨와 핏기 없는 회벽 색의 얼굴은, 분명 내가 알던 그인 동시에 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었네.
부모님 입장에서는 목숨이라도 건지겠다는 최선이셨던 것 같아.”
“...........”
뭐라 같이 이야기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눈으로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 와중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마주 보고 멍하니 서있는 중, 뒤에 기다리고 있던 우버 기사의 차가 시동을 걸고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긴 몰라도... 짧게 끝날 이야기는 아닌 듯 보였겠지.
“지금은... 괜찮아..?”
“아직 회복 중이야.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한마디. 한마디. 다짐하듯 스티브는 말을 이어갔다.
"병원에 있는 동안,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것을 내내 너무 후회했어. 벌 받는 건가.. 싶었기도 하고. 당신과 그런 방식으로 끝내는 건 아니었는데.
미안했어.... 진심이야.”
모든 물류 배송이 마비된 도시였지만... 그라면 충분히 사람을 구해 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짐을 핑계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하는 그의 전화에 응한것은, 끝으로 한 번은 그에게 따귀라도 한대 시원하게 남겨줄 작정이었는데.
예상외의 상황에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은 나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눈물은 샘솟듯 멈출 줄을 모르고 툭 툭 툭. 발 끝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미 헤어진 연인이고, 그것도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헤어진 마당이라 그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의 감정이 그의 그런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유전 터지듯 샘솟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 함께 지나온 시간이 있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 속에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아 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전쟁같이 매일을 버티던 삶이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편안함이 있었다. 이제 이 도시에도 ‘나의 자리’가 있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나의 주변 공기를 채워주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늘 치워도 치워도 계속 날아드는 먼지처럼 쌓였던 추억이 있었다.
그러니.
이 눈물은.
허무해져 버린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슬픔이었다.
이 도시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바라던 작은 꿈들.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었던 감정들.
많은 기회와 인연이 파도처럼 밀려들던 도시의 에너지가.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더라도 이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게 말하고 있기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잠깐 지나가는 바람에도 어이없게 흔들리는 그의 바지가 그 모든 것이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는 현실이라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택시 안.
창 밖으로 다가오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고 있노라니...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디딘 날이 떠올랐다.
차가 속력을 내어 도로 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오던 뾰족뾰족하고 높은 건물들이 [마치 언젠가는 나도 올라가 볼 수 있을 곳]처럼 느껴져 빠르게 두근거리던 가슴 떨림의 기억. 살짝 내린 창문 바깥에서 들어오는 한 겨울의 얼음장 같던 공기도 설렘으로 상기된 볼을 가라앉힐 수 없던 시작의 기분.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던 그때의 노력, 인생을 걸었던 도전과 열정의 시간들이... 이제는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빌딩숲만큼 더욱 실감 났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다시 집앞.
우버에서 발을 내리고 잠시 뒤, 주변이 온통 소란스러워 시계를 보니 7시였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박수와 갈채의 시간.
박수와 환호, 악기 소리까지 오만가지 소리가 메아리치는 거리에 발을 내리고 서서 멍하니 서있었다.
저녁 7시.
아직 지지 않았지만 사라지기 전 오렌지 색으로 더 발광하는 석양을 즐기며 그와 즐기던 저녁 식사의 시간이자.
하루 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던 주름 자국이 뚜렷한 크롭트 팬츠를 입고 퇴근길에 장을 보던 시간이었고.
주말이면 바에서 친구들과 모여 맥주 한잔 하던 시간이었던 이 시간이.
이제는 모두의 삶이 정지된 채, 아니 중단된 채. 혹은 사라진 채....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아직 우리는 살아 있음을 힘주어 외치는 시간이 되었다.
짝. 당신의 삶도
짝. 나와 같이
짝. 무너지고 있나요
짝. 이제 다음은 무언가요
짝. 다시 시작할 수 있나요.
짝. 할 수 있을까요.
짝. 아니면... 이제 그만해야 할까요.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위한 모두의 박수 속에 서서,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제자리를 찾은 지 몇 달 안되는 살림살이들을, 이삿짐 센터에서 가져다 준 박스에 하나씩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간 잡고 있던 작은 희망들도 꼭꼭 접어 함께 박스 속에 집어넣었다.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던 회사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몇번인가 전화를 했지만 연결도 되지 않고, 남겨놓은 보이스 메일에도 회신은 없었다. 그 외 다른 곳도 이리저리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그나마 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곳은 지금 월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월급을 제시하는 곳들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일들이라도 잡고 버티며 기회를 더 기다려보고 싶었지만...내 통장의 잔고는 나에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한 유예기간도 허락치 않았다.
'돌아올 수 있을거야.
다시 와서..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야. 바이러스가 사라지거나 백신이 나오고 다시...이 도시가 사람들로 가득 차면. 그 때 돌아오자. 잠시만..떠나는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자꾸 되뇌어 보아도,
자꾸만 눈앞이 뿌옇게 보이도록 차오르는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고,
힘주어 다문 입술을 비집고 비명같은 흐느낌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The End.-
안녕하세요.
맨모삼천지교입니다.
이렇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두 번째 단편 소설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소설이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 모든 제 소설들의 모티프가 된 뉴욕의 코로나로 인한 상황은 예쁜 해피엔딩을 잠시라도 꿈꿔 보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잔인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특히... 꿈을 찾아 이 곳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습니다.
더이상 이 곳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잃고 고향이나 도시 외곽으로 떠나갔습니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 지 모르는 채 말이죠. 그 모든 사람들이 다시 이 곳으로 모여들 수 있는 그 날, 이 소설의 결말도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부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길 바라며.
새로운 단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