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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울미예쁠연 Jul 30. 2021

No where 혹은 Now here

마흔살에 굳이 혼자 유럽여행 #1

2018년2월.

나는 진짜로 40살이 되었다.​


좀처럼 실감나지 않던 여자나이 마흔.


여중생 시절엔,  교생선생님으로 온 대학생 언니도, 마치 인생 저 너머의 나이 많은 어른처럼 보였고,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엔 군대 다녀온 복학생 오빠들을 보면, 또 그렇게 오래된 사람들 같았지.​


시간은 흐르고 나는 어느덧, 결혼을 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이제는, 복학생 오빠들도 뽀송뽀송 솜털가득한 청춘으로 보이는 나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지나,

 나에게 안 올 것같던 40번쨰 생일을 맞았다.

나쁘지 않았다. 헌데 뭔가 헛헛하다.​


.캐나다에서는 40살 생일을 꽤 거하게 축하해주는 문화가 있다.

마치 한국의 환갑잔치 같다고나 할까.

인생의 반 정도를 열심히 살아왔다고 축하해주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해 마음을 담아 격려하는 의미일것이다.

그래서, 나도 마음껏 나의 자랑스러운 마흔살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

나는 나에게“가장 해보고 싶은 일 하기”라는 선물을 주었다.

해보고 싶은 일은 너무 많았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바라던 일은,

 20대 청춘에도 못해본 오롯이 “혼자여행”하기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혼자 있어보기. 지금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로 부터 잠시 나를 떨어뜨려 놓기.남이 아닌 나에게 좀 더 집중하기.

그렇게 나는 합법적인 가출을 실행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의 성격은 대체로 독립적이다.

가난한 집의 네번째 딸로 태어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스스로 해결하며 자랐다.

내가 벌어서 혼자 쓰며, 가고 싶은곳 가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하루하루 그저 남들 흉내내며 살기 바빴던거 같다.

20대 꽃다운 청춘엔 뭐가 그리 바빴는지 다들 간다는 유럽 배낭여행 한번을 못가보았고-사실 돈도 없었다-30대엔 세아이의 출산과 육아의 도돌이표로 지쳐있었다.

그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좀 생겼고 여행도 좋아했기에, 종종 비행기도 타며 여기저기 다니기는 했지만 늘 가족과 함께였다.

그래도 그땐 그게 더 좋았다.

헌데 40이 된 지금,오롯이 나만 생각하며 나 혼자 새로운 곳에서,나를 돌아보는

 “혼자여행”을 해본적이 없다는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그렇기에 두번째 나의 스무살.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온 나를 토닥이며 이번엔 너 하고 싶은거 해봐! 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그렇게 나의 생일선물은 “혼자여행하기”를 받아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캐나다로 이민 온지 3년차.


남편은 한국에서의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낯선 땅에서 파릇파릇한 20대들과 학교 다니느라 버거워하고 있다.

아들셋의 학교는 급식이 아니라, 매일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데

내가 없다면 남편이 매일 챙겨줘야 한다.


 아이들이 12살 전엔 꼭 어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캐나다 아동법상,등하교는 물론, 내가 없는 집에서, 늘 남편이 상주해야한다.​

모든걸 남편 혼자 감당이 될까?


 내가 없는 동안 집안에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다보니, 내가 혼자 여행을 갈 수 없는 이유가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무리겠지.하며 꿈꾸던 여행을 포기하려던 찰나,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지금 아니면 언제? 지금 아니면 그 언제가 오기는 할까?

늘 그때그때 안될 이유는 넘쳐날 것이다. 그걸 다 해결할 순 없지만, 정말 꼭 해결해야 하는 걸까?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딱 한번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걸 해보면 안될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나는, 하면 안되는 이유에 파 묻히기 전에, 해야 할 이유들을 향해 힘차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에게는, 생일 선물을 부탁한게 아니라, 그냥 통보를 했다.​

맘속으로는 이래도 되나? 이게 가능할까? 이게 뭐라고 애들과 남편을 고생 시키는 혼자 여행이냐 하면서 , 여행을 가기도 전에 죄책감과 여러가지 감정들이 섞인 엄청난 파도가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당당하게


 “난 싸울 준비가 됬으니 어디 한번 안된다고 해보시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을 내 뱉었다.

 그렇지만 사실 싸울 준비는 개미 엄지발톱의 때만큼도 없다.​


진정 쿨녀의 길은 참 멀기만 했다.가지 말라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도 남았다.

용기없고  자신감 없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들키기 싫은 센 언니의 잘난 척으로 똘똘 뭉친 통보였다.

 “나 40살 생일 기념으로 혼자 여행가려고”


“어디로?”


“나도 몰라. 그냥 혼자 갈거야.지금부터 생각해봐야해”


“……”  


“어,그래 .다녀와”

뭐지 이건?

너무 쉽게 “어그래”가 뭐지?

생각지 못했던 반응에 혼자 오만가지 고민을 했던 내가 우스웠지만 그래도 쿨하게 반응해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나중에 밝혀진 남편의 쿨내 진동한 “어그래” 사건의 전말은,

 남편과 내가 각자 생각했던 “혼자여행”의 범위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활동적인 나는 해외여행을 최소1주일 생각했기에  “그게 가능할까?” 였고,

조용한 성격에 활동범위가 그리 크지않던 남편은 “하루이틀 여행인데 다녀와”가 된 것이었다.

계약내용을 보여주지않고, 우선 계약서에 싸인부터 받아 논 듯한 마음에 괜스레 기뻤다.

서둘러 이 효험한 계약서를 내 위주로 수정,보안 하고 하루라도 빨리 합법적인 가출을 진행해야만 한다는 상황을 인지했다.​


두근두근 마음은 이미 공항 면세점을 지나 비행기에 앉아있고,

벌써 내 여행이 시작된거 같아서 마구 설레었다. 물론, 나의 혼자여행하기 라는 꿈이 실현되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모든 상황이 준비가 덜 된듯하여 시도조차 못할 뻔 했었지만,그래도 한번쯤은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을 해주고 싶어서, 조금 미련하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 하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완벽한 시간이었다.​

내가 무모했고 미련했기에 받을 수 있었던 값진 선물이었다


.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이, 준비가 안되서 시작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시작을 안해서 준비가 안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혼자여행하기 라는, 아주 큰 선물을 받았고,

 나이 40살에, 처음으로 유럽땅을 밟았다. ​

2주라는 시간을 평생의 추억으로 남기게 되었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가.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지만, 확실한건 그 시간은 이제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남게되었다는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물리적인 시간이라는 이유로,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 일 수 도 있다.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이전에, 내가 얼마를 버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를 따져보기 이전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남도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사실을 잊지않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너무 소중하다는걸 좀 더 빨리 알게 된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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