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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울미예쁠연 Jul 30. 2021

사연있는 여자

마흔살에 굳이 혼자 유럽여행 #2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범벅이 된 여행가방을 바라보자니 마치 길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난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이른 아침 시간.

엄마의 합법적인 가출을 배웅해 주기 위해 온 가족이 공항으로 출발 했다.

집에서 고작 20여분 남짓 달려서 도착한 공항.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도 걸렸지.


달콤쌉싸름한 공항의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족과는, 주차장에서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차 안에서,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응원을 듬뿍 받고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여행가방을 내리고 무겁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을 향해 걸어간다.


 그 순간, 여행가방을 끌고 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막내 윤상이가 갑자기 차 안에서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생이별을 하는 이산가족이라도 된 것 마냥 , “엄마”를 반복해 부르면서 서럽게 울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지? 도대체, 혼자 여행이라는 게 , 아직 어린아이에게 이런 상처를 줄 만큼 가치가 있나?’

그 순간 밀려오는 죄책감과, 두려움.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집으로 가는 차에 올라타고 싶었다.

당신이 만약 “엄마”라면, 긴 설명이 없다 해도 이 기분을 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쿨하게,바로 비행기 표를 취소 하고, 다시 차에 올라타서, “혼자 유럽 여행 가기” 같은, 비현실적인 일은 역시 일어나지 않는 거야!’ 라며, 일상으로 돌아갈까 싶지만,

 비행기 값이 너무 아까웠다.

사실 그게 전부다.  내가 꿈꾸던 ‘혼자 유럽 여행하기’를 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지켜준 건 그저 질러버린 카드값.

그게 다인 걸 어쩌랴.


울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내가 꼭 이래야 하는 걸까’ 하며 요동치던 마음에 다시 평정심을 되찾게 해준 건,

 나의 어떤 고결한 의지나, 삶의 철학 뭐 그런 거 아니고, 그냥, 환불이 안될 비행기 값이었다.

나의 복잡 미묘하게 요동치던 가슴의 아림은, 환불이 안될 비행기표, 가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갚아야 할 돈의 액수에 금세 잔잔해졌다.

 아.. 뼛속까지 아줌마.

 ‘미안하다 아들. 돈이 아깝구나. 이미 질렀어.

그리고 생각해보니, 40살 된 엄마의 꿈도 중요하단다!’ 라면서, 나는 아들의 마지막 적극적인 방해공작에 넘어가지 않고,  마이웨이 를 걷기로 했다.

 벗 알라뷰 마이 썬!


 가족과 쿨하지 못한 작별의식을 마치고 드디어 혼자 조금은 번거롭지만 신나는 출국 심사 과정을 지나 반짝거리던 면세점을 통과하여 나를 런던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배낭 하나, 편한 레깅스, 손에는 커피 한잔.

출발시간보다 넉넉하게 일찍 온터라, 아직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책을 펼쳤다.

좋은 향의 커피를 마시며, 누구의 방해도 없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몇 시간 후 나를 런던의 멋진 공항에 데려다 줄 비행기가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너무 설레었다.

동시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혼자 여행 가는 엄마를 보며, 지나치게 오열하던 막내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고, 막내가 울자, 가까스로 참았던 눈물이 흘러서, 소리도 안 내고 울던 첫째, 둘째 아들들의 얼굴이 생각나며, 그 모든 후 폭풍을 감당해야 할, 남편이 안쓰럽고, 보고 싶어 졌다


갑자기 사연 있는 여자처럼, 혼자 앉아서, 또르륵 흐르는 눈물들을 닦았다.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이상해도 뭔가 한참 이상한 ‘나 혼자 공항에 앉아있는 이 상황’에 애써 적응하려고 했다.


스물 아홉살에 결혼을 하고, 같은 해에 첫째 아들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 후 5년새에 두 아들이 더 생겼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 아빠들이 그렇듯, 얼굴 보기 힘든 아빠 덕분에, 오롯이 혼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 꽃 들의 전쟁처럼 살아온 날들.

엄마가 된 이후, 워킹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지난 10년을 단 하루도 아이들이나 남편 없이, 혼자 오롯이 어딜 가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새삼,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40년을 살면서, 아이 셋의 엄마, 누군가의 남편이 되니, 여러 모양의 “나”는 참 많아져 있었다.

 마치 “나” 인 것 같은 , 나의 분신들이 셋이나 있고, 여러가지 이름표의 ‘나’로 살아온 세월들.

 이름표가 아닌 그냥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큰 죄라도 짓는 일인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되고 싶은 것이 된 것뿐인데, 수많은 “나”는 마치 그것이 무슨 죄인 것 마냥, 나를 자꾸 손가락질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고, 내 욕심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나머지 시간들을 곱씹으며, 무책임한 내 모습에 내가 너무 싫어졌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해줄 용기.

 내가 나를 이해해줄 용기.

 내가 나를 응원해줄 용기.


10년 동안 “엄마”라는 모습을 가장 사랑하며, 살아온 나에게, 잠시 “류미연”으로 살아도 된다고 토닥토닥 해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지금 나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진심으로 , 차고 넘치도록 행복하다면,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도 그 행복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내가 나를 달래주며, 이해해주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 잠시 쉬어도 돼.’

내가 나를 토닥토닥하며, 자아와의 심각한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아무리 징징대도 환불은 안된다니까”라는 팩폭으로 맘을 달랬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저 애 셋에 치이지 않고, 나 혼자 비행기 한번 타보겠다는 소박한 꿈조차도,-아 그래. 인정! 소박하진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소박한 꿈일 수 있다구!-

용기와 이해 없이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다 시금 느끼게 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자!’ 이제 내가 가야하는 곳은 아이들이 있는 집이 아니고, 혼자서 가는 유럽이다.


온전히 편하고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요,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륙하기전,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화상통화를 했다.


아이들은 금새, 새로운 상황에 적응 한듯 햄버거 하나씩 입에 물고 시끌벅적 신나하고 있었다.

뭐지? 이 배신감은…

역시.... 나 혼자 그런 거였구나.

 살짝 배신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훨씬 나았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류 미연’이라는 자아가 ‘엄마’라는 나에게 도도하며, 당당하게 얌채 같은 윙크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오랜 나의 가뭄 끝에, 작은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봄비여도 좋고. 소나기어도 좋다.

 이제 정말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응원했다.


그렇게 나는 몇시간 후 불어닥칠 멘붕의 연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두근두근 소풍 가는 아이의 해 맑은 얼굴과 기대로 나의 첫 유럽 ‘혼자여행’의 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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