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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Mar 17. 2023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2019)



내가 처음으로 본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별의 목소리>(2002)이다. 솔직히 그때 이 감독 이름을 시간이 흘러 다시 들을 줄 몰랐다. <너의 이름은>(2016)이 한국에서 흥행하고 나서야 ‘아 그 감독이 이 감독이었구나’라 알았을 정도다. 이처럼 나의 기억 속 신카이 마코토 작품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다만, 예전 영화 팟캐스트를 같이 운영했던 동료의 평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도시 아스팔트를 강렬하게 비추는 작화가 굉장히 이질적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2) 개봉 전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 흥행 기록을 가졌던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었다. 그 뒤 개봉된 <날씨의 아이>는 전작의 흥행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최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2022)은 꽤 흥행을 달리는 모양세다. 굳이 극장에 가 최근 작품을 보기는 마땅치 않아 주말 밤 내가 찾은 작품은 <날씨의 아이>(2019)였다.




묘하게도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볼 때마다 어떤 무력감을 느낀다. 주인공들은 재난과 위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심정을 종종 드러낸다. 이들은 대개 십대 청소년으로 과도한 짐을 지고 있다. 정작 상황을 해결할 어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호다카는 무작정 가출해 도쿄로 온다. 영화는 왜 그가 가출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이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호밀 밭의 파수꾼>에서 유추할 뿐이다. 호다카는 어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인 섬을 뛰쳐 나왔다.



여주인공 히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그녀는 남동생과 남겨진다. 미성년자인 이들 남매는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누나인 히나는 그런 사정을 해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이들 주인공의 각자의 위기 상황에 더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연 재해다. 이상 기후로 도쿄에 연일 비가 오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히나는 우연히 얻은 능력으로 날을 잠시 화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녀는 전설로만 내려오던 날씨의 무녀인 셈이다. 그런데 어떤 능력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능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녀의 몸은 물로 채워지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여기서 난제가 등장한다.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앞서 내가 느꼈던 무력감이란 바로 저런 상황에 기인한다. 누구도 겉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마치 ‘너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작품의 백미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결단에 있다. 이야기 말미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히나를 호다카는 구출한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잃어가면서 집단을 구하려는 그녀의 선택을 그는 반대한다. 그 결과 기상이변은 해결되지 않고(?) 그 이후 무려 3년 동안 비가 내린다. 이런 결말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난은 해결되지 않고 세상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결과 도쿄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다.



결론에 이르러서 완전한 해결을 바랐을 관객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저런 결말을 설득력 있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무책임하다고 논평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단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는 선택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지만 다른 편으로는 저렇게 밖에 해결할 수밖에 없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의 해결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에게만 의지하고 그(그녀)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무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왠지 꺼림칙하다는 심정을 고백해야겠다. 개인의 선택 뒤에 숨어 공동체의 문제를 방치한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만족스러운 지점이 딱(!) 하나 있다. 어찌됐든 주인공 호다카와 히나는 시간이 흘러 그들이 헤어진 곳에서 재회한다. 마치 운명처럼 말이다.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가 어떤 끈에 이어져 다시 만났듯이 말이다. 설령 환상일지라도 나는 어떤 희망을 본다. 주인공들이 어른일 될 때쯤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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