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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May 08. 2024

미군부대 간호사 영업비밀, 환자 마음을 훔치는 비법

말 안듣던 아이가 변화되는 4단계 매직

미군부대 소아과에 근무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신생아,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 중 진료에 가장 협조가 안 되는 아이들은 영유아들이다. 나에게는 생후 15개월~3,4살 아이들이 가장 협조가 안 되는 친구들이다.


이 시기는 자유롭게 걷고 뛰기 시작해 다리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다. 보통 허벅지에 주사를 놓는데 다리힘으로 버티기 때문에 주사를 놓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기본인 , 몸무게, 활력징후 측정이 불가하기도 하다.

활력징후는 온, 호흡, 맥박, 혈압으로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표다. 웬만하면 어르고 달래 측정해야 한다.


나랑 눈만 마주쳐도 머리를 흔들며 우는 18개월짜리 여아(가명, 실비아)를 만났다. , 몸무게는 엄마를 활용한 방법으로 간신히 측정을 했는데 맥박(심박수), 체온은 죽어도 못 재게 했다.


스티커로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의사에게 협조불가하다는 통보를 하고 바로 진료에 들어갔다. 과연 이 통제불능 아이를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컨트롤할까?

1단계 라포형성, 의사 선생님의 무기는 청진기에 달린 신기한 라이트다. 거북이 모양으로 버튼을 누르면 입이 열리며 불빛이 나온다. 1단계서 웬만한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거북이 삼매경에 빠진다. 딸깍딸깍 버튼을 누르며 주의가 분산될 때 온몸을 체크한다. 하지만 실비아에게는 실패! 거북이가 실패하면 그다음은,

2단계 직접 해보게 하기, 체크하고 싶은 부위 예를 들어 귓속을 볼 때는 사용하는 도구를 만져보게 하고 부모에게 시범을 보인다. 의사가 엄마 귀를 먼저보고 아이의 귀를 보려고 하면 많은 친구들은 '오케이' 한다. 그런데 실비아는 꿈쩍도 안 다. 그럴 땐 재빨리 엄마에게 양해를 구한다.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줘도 될까?' 모든 엄마들이 수락한다.

3단계 다양한 먹거리, 그냥 달랑 사탕 한 개만 주면 안 된다. 무조건 귀여운 상자나 통에 다양한 종류의 선택지를 넣어와야 한다. 의사 선생님 필살기 사탕통은 책상용 푸우 휴지통, 그 안에는 대여섯 개의 다른 맛 막대사탕이 들어있다. 우선 선택을 하게 만들고 바로 까서 입에 넣어준다. 그 후 다시 귀를 들여다보면 99%는 보여준다. 우리 실비아를 제외하면 말이다.

4단계 '찾기 놀이', 아이와 논다. 그전에 실비아가 어떤 만화캐릭터를 좋아하는지 간파해 보자. 그녀는 반짝이는 미니마우스 가방을 메고 왔다. '실비아, 미니마우스가 어디에 있어요? 엄마 귓속에 있나? 실비아 귓속에 있나? 선생님이 찾아볼게요' 하면서 잽싸게 귀를 체크하고 내친김에 심장, 배까지 청진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한한 칭찬이다. 스스로 거북이를 눌러도, 사탕을 까도 귓속을 보여줘도 '굿잡, 굿걸' 그야말로 난리굿을 떨며 칭찬해 주고 하이파이브로 마무리한다. 진료가 무사히 끝나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조심스레 제안을 했다.


'실비아, 우리 손톱에 신기한 스티커 한 번만 더 붙여볼까?'


조그만 손을 가진 아이들의 맥박수와 산소포화도는 어른의 것과 달리 스티커로 되어있어 보통 두 번째 손가락에 붙인다.

왼쪽 영아용, 오른쪽 성인용

여기서 '매직~~ 매직~~ 매직~~'이 일어났다. 털끝하나 못 건들게 한 실비아는 놀이, 사탕, 칭찬으로 180도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흔쾌히 손가락을 내주고 귓속에 체온계를 집어넣게 해 줬던 것이다. 진짜 소리라도 지르며 기뻐하고 싶었다. 이게 바로 눈높이 진료다.


나는 실비아를 환자로 봤고 의사 선생님은 18개월 실비아 아이 자체로 봤다. 그러니 달랑 스티커 한 장으로 실비아의 환심을 사려했던 나는 실패하고 실비아가 뭘 좋아할지 고민했던 의사 선생님은 실비아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직장인들 모두의 고객은 환자, 소비자이기 전에 그들 고유한 존재 자체다! 그들을 회사나 병원을 위한 고객으로 보기 전, 사람으로 대하면 일이 술술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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