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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Nov 01. 2024

환자를 가족같이 생각하면 생기는 일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미군부대 환자들은 군인과 그들의 가족들이다. 그중에는 미군과 결혼해 사별하고 미국시민권자로 한국에 사시는 어르신도 많다. 이런 분들은 한국에 계시지만 미국 시민권자로 부대 병원을 이용하신다. 이들 중 일흔이 넘으신 분들 중에는 영어를 잘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영어로 소통이 힘드신 어르신들은 병원에 오실 때마다 긴장을 하신. 물론 나처럼 한국인 간호사도 있지만 어떤 날은 미국 의사나 간호사만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분들을 보면 꼭 우리 엄마 같아 마음이 쓰인다.

 한 달 전 프런트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환자가 오후 3시에 예약이 되어있는데 오전 8시에 병원에 와서 일찍 봐줄 수 없겠냐고 문의를 했다는 것이다. 첫 환자가 8시 20분이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알고 보니 엄마랑 나이도 비슷하고 남편과 사별 후 혼자된 상황도 같은 70대 한국 어르신이었다. 서울에 살아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행여 늦을까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평택까지 오신 것이다.


 어르신을 마주하니 엄마 생각이 났다. 10년도 전에 혼자되신 엄마도 병원에 가실 때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규모 있는 종합병원은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있어 엄마 혼자는 키오스크 사용도, 병원 내 진료실이나 검사실 찾아가는 것도 버거워하시기 때문이다. 엄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어르신은 들어오실 때부터 나가실 때까지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너무 고마워요. 늙은이라 셔틀버스 아니면 병원도 못 와요. 그런데 버스가 아침밖에 없어서.. 선생님 아니었으면 하루종일 병원에 있을뻔했네. 게다가 한국 선생님이라 다행이에요. 지난번엔 미국사람이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아주 혼났거든요"


 한 달 후 또 맞아야 하는 2차 접종과 독감주사를 아침 8시 20분 첫 타임으로 잡아드렸다. 가실 때 역시 내 손을 꼭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고 엊그제 2차 접종과 독감주사를 맞으러 다시 오셨다.


주사를 다 맞고 고맙다는 인사를 수차례 하시더니 종이백 하나를 건네셨다. "이거 화장품인데 써본 사람들이 좋데요. 선생님도 한번 써보세요." 깜짝 놀라 사양했지만 너무 고마워 그러니 받아도 괜찮다고, 비싼 거 아니니 부담 갖지 말라며 종이가방에 든 화장품을 놓고 가셨다. 

우리 엄마도 낯선 곳에 혼자 가시면 저렇게 헤매고 다닐게 뻔하다. 엄마가 만나는 누군가도 '어? 우리 엄마 같잖아'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이 만나는 낯선 사람을 '내 가족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코멘트도 필요없겠지?


전화를 받는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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