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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Nov 13. 2024

난감하지 않게 '잘 거절하는 법'

영어로 욕을 들어도 정신만 차리면 ok

 예방접종실에서 근무한 지 딱 두 달 되었다. 이 전에는 의사와 두 명의 동료 간호사들과 한 팀을 이뤄 환자를 봤다면 지금은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진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주체성'가지고 업무 할 수 있어 좋지만  이상의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사정을 다 알고 도전했고 후회는 없다. 예상치 못한 일은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인 CDC 가이드라인을 찾거나 의사들에게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적 문제 이외에 가장 힘든 건 역시 인간관계다. 특히 막무가내인 환자들을 대응할 때 적잖이 마음고생을 하는 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방접종실은 예약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의도  면적의 5배 이상에 해당하는 평택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은 1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의 가족, 부대에 근무하는 미국/한국 시민까지 하면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안된. 그에 비해 예방접종실 간호사는 두 명뿐이니 아무리 손이 빨라도 밀려오는 환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내가 근무를 시작하기 전, 예약제로 바뀌었고 아무 때나 환자가 원한다고 주사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는 법이다. 무조건 당일 접종이 아니면  차질이 생기는 취업, 입학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업무 외 시간을 내어 주사를 준다. 하지 무례하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환자에게 단호하게 'No'라고 한다.


 어느 날 오전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서너 살쯤 되는 올망졸망 아이 셋을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엄마 혼자 아이 셋 보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 중 쌍둥이 두 명만 오후 1시 40분 예약이었지만 엄마 상황을 고려해 아침에 봐주기로 했다. "좋은 아침이야"라는 인사도 무시한 채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오늘은 세 아이 중 두 명만 예약을 했는데 나랑 나머지 딸도 독감주사를 맞을 수 있어?"


"미안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주사를 수가 없어. 병원 규칙이라 어쩔 수가 없네.'혹시.."


 "Fuck"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말했다.'잘못 들었을 거야.' 나는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놀랐지만 무심하게 못 들은 것처럼 주사를 준비했다. 이 모습을 보던 한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나머지 아이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예방접종실에서 매일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진 엄마의 고함소리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거 보라고, 주사 한번 맞을 때마다 이런 x 같은 상황을 반복해야 되는데 이 짓을 또 하라고? Fucking %@$€£》¡x"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를 정확히 들었지만 나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가 난 그녀는 잘 가라는 인사도 하기 전 진료실을 박차고 나갔다. 무례한 환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예외를 두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판단했고 그렇다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안된다'라는 말로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쿠션어>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할 경우 좀 더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을 가리킨다. ‘괜찮으시다면’, ‘실례지만', '죄송하지만', '바쁘시겠지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식백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게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거절하기 전 쿠션어를 사용하고 거절 후에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났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그녀 입장에서 화는 나지만 납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감스럽지만 오늘은 예약이 꽉 차더 이상 예약을 받을 수 없어. 알다시피 이곳은 예약한 환자에게만 주사를 줄 수 있잖아. 대신 네가 편하게 올 수 있는 다른 날로 예약을 잡아줄께. 그리고 오늘처럼 내가 잘 도와줄게." 

  역시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거절도 처음에는 피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내 스타일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거절을 경험하고 자신의 의견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연습함으로써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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