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 즐겨마셨던 화이트 와인.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서 바로 구매해 왔다.
와인을 따랐을 때 연한 금빛 색깔이 잔에 은은하게 차오르고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곧바로 퍼진다. 청사과, 라임의 산미감과 복숭아의 핵과류, 파인애플의 열대 과일향과 흰꽃의 풍미 그리고 부싯돌의 미네랄리티도 함께 느껴진다. 말미에는 향긋한 허브향으로 마무리된다.
이 가격대에 이만큼 복합적이고 화려한 와인은 드물다. 그야말로 가성비 갑인 와인이다.
와인을 막 즐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와인을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만 먹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다소 분석적으로 내가 느낀 향과 풍미를 스마트폰에 적어가며 마신다. 어쩌다 보니 와인을 업으로까지 삼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와인을 잘 알아가기 위한 훌륭한 방법이겠지만, 그저 와인을 편하게 마시는 즐거움은 이전보다 덜하게 된 것도 같다.
그러나 오랜만에 '빌라마리아 프라이빗 빈 소비뇽 블랑'을 다시 마셔보니 그 향과 풍미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막연하게만 느꼈던 이 와인이 맛있는 이유를 스스로부터 납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와인에 대한 능숙함이 생긴 덕분에 마시는 와인을 직접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언가에 능숙해지려면 당연히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에 마냥 지치지 않기 위해서 가끔은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편함과 능숙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오래오래 지속하기 위한 요령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