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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

JUST DO IT!

by 허씨씨s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한 행동은 그 바탕이 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행동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알고 납득도 하지만 하지 못할 경우다. 내가 해내야만 하는 행동을 해내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러나 행동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향력이 훨씬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생존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뇌는 회피와 효율을 중시한다. 그러나 삶에서 불편함과 비효율을 감당해야만 하는 순간은 부지기수다. 사람에게 학습, 훈련, 단련, 교육 등이 필요한 이유다.


이 지점에서 '그냥 해(Just do it)'라는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유 상관없이 그냥(just) 행동을 하라는 문장. 사실 이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조차 그 행동이 가져다주는 이익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실 도피 혹은 단기적인 도파민의 분비 등이 있다.


그렇다면 '그냥 해'는 의미가 없는 문장인가? 그렇지는 않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것은 그 행동의 이유보다 행동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말 보다 행동'이라는 오랜 격언과 페이스북 본사에 걸려있다는 '완벽함보다 실행이 더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라는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분명 어떤 행동들은 행동의 이유보다 행동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행동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대부분의 이유는 행동에 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는 행동의 동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행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부분 그 원인은 동일하다. 단기적인 욕구와 장기적인 비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여전히 원시 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기에 장기적인 이유보다 단기적인 이유에 훨씬 쉽게 영향을 받는다. 추후에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되기를 원하지만, 지금 엄격한 식단관리와 운동을 원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결과를 원하지만 지난한 과정은 감당하기 싫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삶에서 귀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당장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미래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심지어 운이 따르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또 그 지점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계속 그 과정을 이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게다가 결과를 달성했다고 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다시 새로운 과정이 필요해진다. 결국 끊임없는 역경의 연속이다.


그러한 삶의 굴레를 잘 구현한 이야기가 바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일 것이다. 신의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는 평생을 경사지 위로 돌을 굴려야만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고생고생 끝에 돌을 정상에 올리면 잠깐의 후련함을 느낀다. 그러나 돌은 금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돌을 언덕 위로 굴려야만 한다. 그러한 삶의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그 숙명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생(生)을 긍정하자는 것이 시지프스가 남기는 교훈일 것이다. 그나마 시지프스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는 돌을 올려낸 뒤에 얻게 되는 보상이 다양하다는 점은 다행이다. 구체적인 여정의 시작만큼은 어느 정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단 한 번 우연히 주어진 삶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 그리고 보유한 역량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달성하고 싶다면 그에 필요한 과정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점은 모두에게 같다. 그러나 참 역설적이게도 결과에 집착할수록 과정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결과를 원하는 만큼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좌절감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해'의 설득력이 생긴다.


'그냥 해'의 동의어는 '아님 말고'다. '그냥 해'는 이유가 없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유에 얽매이지 말고 하라는 것이다. 원하는 결과나 추구하는 이유에 붙잡힐수록 목적지에서 오히려 더욱 멀어진다. 오히려 힘을 빼고 그냥 할수록 목표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나 삶은 운칠기삼을 넘어 운구기일일 때도 있다. 따라서 불철주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남는 것 하나 없이 다시 떨어질 바위를 죽어라 정상에 올려두었던 시지프스처럼.


그렇다면 무언가를 꿈꿀 때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의 모든 성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꿈은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꿈을 꾸겠는가?"


이에 대한 답이 Yes여야만 진정 그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어쩌면 꿈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꿈을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꿈을 그나마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는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를 꿈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이 모든 논의의 시작은 "내가 해내야만 하는 행동을 해내는 것이 관건이다."였다. 이제는 여기에 덧붙여야 한다. "원하는 꿈이 이뤄지지 못하더라도"라고. 결국 다음과 같아진다.


"원하는 꿈이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내가 해내야만 하는 행동을 해내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꿈이 이뤄질 것만을 생각하고 꿈을 꾼다.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꿈은 끝내 미완의 영역으로 남을 수 있다.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순간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꾸고 싶은 꿈이 있는가.


만약 지금 내가 원하는 꿈을 이뤘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저 무한히 감사하라. 그리고 겸손하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주변에 베풀 수 있는 아량을 갖길 바란다. 본인과 달리 운이 없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자들에게 작은 기회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거만한 마음이 든다면 조심스럽게 충고하고 싶다. 본인이 이룬 것이 순전히 스스로의 실력으로 만든 결과라고 믿고 싶겠지만, 어마무시한 운이 함께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운만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그 운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은 없었다. 그러니 그 받은 운을 꼭 주변에 나누길 바란다. 그러면 더 큰 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물론 이미 당신이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 이치를 이미 깨닫고 실천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반면에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내가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너무 슬퍼하지는 마라. 애초에 삶에는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하면 되는 거다. 해보고 아님 말고. 그러다 보면은 나도 모르는 순간에 무언가는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내가 원했던 바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비견할 수 없는 가치와 아름다움이 묻어 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


행여나 좌절했을지라도 결코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마라. 다만 그냥 해라(Just do it!). 꿈에 집착하지 마라. 그저 해내야만 하는 행동들을 해내라.


삶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꿈을 이룬 자의 것이 아니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다시 꿈꿀 수만 있다면 삶은 그대의 것이리라.


그렇게 삶을 스스로 소유하고, 마침내 자유로워지기를.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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