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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Apr 09. 2021

학교를 벗어나 보니 알겠어. 왜 학교가 필요한지

자퇴 후 펼쳐진 삶 (7)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그 뒤로 어떻게 됐냐요?


18년(고2 나이)에 처음 치른 수능. 잘 볼 리가 없었죠. 언수외(언어, 수리, 외국어)는 고1 때보다 나아지긴 했어요. 그런데 사탐 공부는 하지도 못했어요. 언수외 따라잡는 게 더 시급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늘 그 사람 생각하느라 암기 과목은 머릿속에 입력이 안 됐거든요. 언수외 중에서도 언어를 가장 못 봤어요. 딴생각으로 가득한데 글이 읽힐 리가 있나요. 수학은 그나마 선방한 것도 같은데. 사실 성적은 기억도 잘 안 나요. 수능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불안했을 만한 상황이긴 한데, 왜 수능에 대한 걱정도 잘 안 됐는지 모르겠어요. 수능에 정말 관심이 안 갔어요. 다른 생각들 하다가 가끔, 문득, 아 맞다 나 수능 준비하고 있지? 떠오르는 정도였다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간이 컸다 싶기도 해요.


그런데 독학 1년 해보니까, 더 이상 못 해 먹겠더라고요. 난 외로움이란 걸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독하게 혼자에 가깝게 있어 보니까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더군요. 물론 도서관 사람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비정기적인 친목이었으니까요.


사막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어요. 독학하는 1년 동안 수능 범위를 다 따라잡아 놓긴 했는데, 별 보람도 느낄 수 없었어요. 혼자 공부하는 데 진절머리가 나버린 거죠.


그리고 자퇴하고 학교에서 몇 달 뒤에 연락이 왔어요. 학교 초반에 1학년 전교생이 세계 글쓰기 대회를 나간 적이 있거든요. 큰 상은 아니고, Honorable Mention 정도지만, 저 혼자 타게 되었다구요.


그때 약간 깨달았어요. 내가 너무 뒤처져있고, 조급하고, 절대 따라잡을 수 없고, 희망도 없고,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는 듯하고, 열등감에 시달려 있던 게, 어쩌면 혼자 만들어낸 착각이었을 수 있겠다. 그렇게 다 놓아버릴 필요는 없었겠다. 왜 그렇게 학교 안에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근데 뭐, 그땐 그랬어요. 나는 아무것도 못할  같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아무런 의욕이 없었죠.







이미 자퇴한 지 1년이 지났는데, 학교로 돌아갈 순 없고. 결국 찾아낸 건, 재수학원이었어요. 보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N 수 할 때 가는 곳인데 저는 19살에 가게 된 거죠.


처음엔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부모님께 면목이 없더라구요. 학교 수업이 비효율적이라서 자퇴를 했는데, 수업료도 꽤나 비싼 재수학원에 들어간다? 참 죄송했죠. 그런데, 도저히 독학은 못 하겠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용기를 내서 재수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또 웬걸, 재수학원 너무 재밌었어요. 생각보다 자퇴하고 재수학원에 들어온 저와 같은 친구들3~4 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랑 친해졌는데 너무 즐거운 거예요. 한참 붙어 다니는 친구, 언니들과 함께 '야상팸'이 형성됐어요. 재수학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저희 모두 야상을 입고 다녀서 '야상팸'이란 이름이 붙었어요. (갑자기, 너무 그립다.)


선생님들도 너무 좋으셨어요. 특히 담임 선생님이셨던 국준쌤...  성함은 박태준인데, 국어를 가르치셔서 국준쌤이라고 불요. 여전히 일 년에 두세 번씩 안부 묻는 연락이 오고가는데, 아직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을 못 찾아뵌 게 너무 죄송스럽네요. 지금은 세종에 계시대요. 장난도 치시면서 따뜻하신 분이셨어요. 제가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시 대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쓴 시 첨삭도 해주셨었죠. 재수학원에서 수능 공부는 안 하고, 어떻게 보면 입시에는 쓸데없는 것들만 했는데.. 한숨 쉬시면서도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아, 가끔은 수업 빼먹고 기타랑 작곡 배우러 다녔어요. 근처에 작은 중고 피아노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한 달에 3만 원인가 내면 기타를 가르쳐 주더라구요. 온화하고 중후한 가게 주인아저씨가 가르쳐 주셨어요. <반짝반짝 작은 별> 까지 연주할 수준이 되긴 했는데 F코드 잡는 게 너무 어렵더라구요. 손이 크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지금은 기타 연주 하나도 못 해요ㅋㅋ


수업 빼먹을 때마다 경비 아저씨랑 실랑이하던 기억 납니다. 재수학원이 오후 6시까지인가는 밖에 못 나가게 하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자꾸 밖에 나가려고 하는 저 보고 뺀질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은데ㅋㅋ 그래도 재수학원 선생님들 모르게 문을 종종 열어주셨어요. 참 친절하고 귀여우신 분이셨는데, 혹시 저를 기억하시려나요?


1년의 재수학원 생활 동안 참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다 적지는 못 했네요. 글솜씨가 좋아지면 하나하나 기록해 보고 싶어요. 참, 영화 같은 추억들이에요.







아 참, 아무튼, 그래서!


학교를 벗어나 보니 알겠더라구요. 학교가 왜 필요한지. 꼭 지금의 '학교'는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뭔가를 같이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요. 물론, 지금의 학교 방식으로는 여전히 아쉽고, 오히려 안 좋은 걸 배워갈 때도 많아서 개선이 필요하겠지만요.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저는 그 뒤로 뭔가를 공부할 때 혼자서는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것을 배울 수 있는 현장에 가요. 사람들이 있는 곳. 사람들에게 묻고 질문하면서 배우곤 합니다. 그게 저에게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설레는 일이더라구요.


공부와 멀어진 것 같았지만, 아니었어요. (시험공부에는 여전히 약해요.) 전 공부를 좋아하더라구요. 뭔가를 알아가고, 기존의 내 생각이 깨지면서 세계가 넓어지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접하는 것.. 무엇보다 그걸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나누는 일.. 너무너무 설레고, 살 맛 나게 하는 일이에요.


진짜 공부,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제대로 찾은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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